본문 바로가기
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소를 키우지

by Happy Plus-ing 2005. 4. 27.
728x90

 

 

소를 키우지 아들 못 키우겠습디다. 

 

사람의 위가 도대체 얼마큼의 용량을 지녔는지 가늠키가 어렵네요.^^
뭔 말이냐고요?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우리 아들놈 말입니다. 이 놈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는지 끝도 없이 들어갑니다. 쇠도 녹이겠습니다. 어지간해야지요. 거짓말 좀 보태 밥 먹고 돌아서서 설거지도 덜 끝났는데 벌써 뭐 먹을 게 없는가 싶어 냉장고 문 열고 섰습니다.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체질이었다면 아마도 母子지간에 어지간히 치사한 말이 오갈 뻔하지 않았겠습니까?
자식 먹는 게 아깝냐고요? 엄마 자격 없다고요? ㅎㅎ 좋아서 그러지요.
옛 말에 제 논에 물 줄줄~~ 들어가는 거랑 자식 입에 밥 술술~~ 들어가는 거 보는 일이 제일로 좋다고 안 합디까.
먹는데 장사 없다고, 키가 쑥쑥 크니 본인도 신기한지 걸핏하면 안방 문 옆에 기대서서 키를 재어 달라 하는데 금 그을  매번 똑같은 색깔로 긋지 않아서 총천연색에다가 키를 잰 날짜도 삐뚤빼뚤 적어놓았으니 참말로 지저분하기도 합니다.
더 지저분해진대도 괜찮다는 소리지요, 행복하다는 소리지요 뭐.


제 자식 잘 먹고 잘 크는 것만 좋아서 입이 헤~~ 벌어져 있다가 문득 좀 미안한 생각 떠오릅니다.
그저께 큰 집 장조카가 다녀갔는데 미성년자였던 두어 해 전에 휴대폰을 장만해주며 명의까지 빌려주었던 것을 이제 본인의 이름으로 바꾸어야 도리일 것 같다며 왔더랬습니다. 어엿한 성년이 된 장조카! 울 형님이 시집와서 5년 만에 낳은 첫아들이니 금이야 옥이야 참으로 귀한 자손입니다.


세월도 빠르지. 큰댁 장조카가 시골에서 우리 집으로 주소지를 옮겨 전학을 왔습니다.
잘 먹이고 잘 챙겨줄 자신도 없으면서 덜컥 아이를 맡았지만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싶으면 군소리 없이 포기하고 착한 척하는 것이 제 주특기입니다. ㅋㅋ 한창 클 나이의 사내아이였지만 나의 아이들이 아직 어렸던 탓에,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 집이 별반 다를 것 없던 형편이었으므로 그렇게 특별하게 챙겨주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래도 2년 정도 있는 동안 생일도 두 번이나 지나갔고 수학여행, 체육대회... 등등 내 딴에는 한다고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엄마로서 좀 미안한 실수를 저지르는 날이 있었는데요. 공교롭게도 그 날은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고 여러 선생님들의 도시락까지 몇 개 분담을 받은 바람에 더 정신이 없었던 것 같지만 분명히 조카가 학교 체육대회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딸 챙기느라 조카의 말은 깜빡했었던 가 봅니다.
학교에서 점심 급식을 하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학교에 보냈는데 점심때쯤에야 느닷없이 생각이 나면서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지요.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진짜 엄마랑 가짜 엄마의 관심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허둥지둥 학교로 가보았지만 이미 마치는 분위기의 운동장에서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찾을 도리가 있나요. 이런 망할 노무 여편네.. 자책감에 남편에게 이실직고도 못했답니다.

사춘기라 그런가 가끔은 아이가 침울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돌아와서 씻지도 않고 그냥 입은 채로 쓰러져 자거나 하면
피곤해서 자나보다 하고 깨우지도 않고 그냥 밤새 재운 적도 있었지요.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자기 수준에 맞게만 생각하고 판단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럭저럭 작은 엄마 노릇을 나름대로 수행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시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충격적인 조카의 말은 -작은 집에서 지낼 때 배가 고팠다.~~~ 라는 소리였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다른 건 몰라도 배가 고팠다니 이런 괘씸한 놈을 보았나.. 참 섭섭하고 사람 거둔 끝이 이렇구나... 싶었습니다. 그래 아무려면 진짜 엄마보다야 낫겠니 그러니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을 거야 라고 단정 짓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아들을 지켜보면서 확실히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진짜로 배가 고팠던 거였어요. 먹어도 먹어도 금방 소화가 되어버리는 그 나이 때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거였어요. 먹는 것 가지고 마음 상하는 것만큼 치사한 것이 없는데 조카가 진짜 배고팠으리라 생각되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이제 저도 컸다고 간간히 고마움을 전해오며 왕래할 적마다 그때일을 농담처럼 꺼내 사과할까 하다가 공연히 옆구리 찔러 절 받길 원하는 나쁜 작은 엄마가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그냥 덮어둡니다.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요 뭐.

20040420

728x90

'오늘도 감사한 하루 > 오늘보다 나은 내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냄새 나쁜 냄새  (0) 2005.07.29
백내장 수술  (5) 2005.07.02
남자는 언제부터 어른일까  (2) 2005.04.15
부모된 罪가 큽니다  (4) 2005.03.14
호상인줄 알았는데....  (5) 2005.02.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