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이방인' 서동주, 서정희 부녀- 파란만장한 인생
불륜을 들키면 악마로 변한다.
서세원, 친딸에게 "쓰레기 같은 X…피부 벗겨 지갑 만들겠다"
이게 진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일까 허구를 약간 섞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저렇게까지 악랄한 인간이 그동안 대중들을 속이고 웃고 웃기고 하다하다 마지막엔 목사가 되어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고... 부부 사이야 둘 만의 이야기이니까 그렇다치고 어떻게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저다지도 흉악스럽고 괴물스러운지 귀를 씻어낼 정도다. 남의 불행을 들여다보는 심정이 될까봐 내가 다 미안해서 대충 흘려듣고 기사들을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요즘 '골 때리는 여자'들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면서 축구를 통해 서서히 치유되어 가는 듯한 막내 서동주씨를 보면서 얼마전 출간하자마자 완판되었다는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을 구매하고 말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이방인/ 서동주 著
서동주는 아빠 서세원의 감시로 한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고도 털어놨다.
서세원은 서동주의 일기에서 '좋아하는 선배와 같이 공부하고 밥을 먹었다는 내용'을 몰래 읽은 뒤 "이 쓰레기 같은 X아! 돈 들여서 유학 보냈더니 연애 따위를 하고 앉았어?"라고 폭언을 쏟아냈다.
또 미국에 있는 딸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난 널 죽이러 미국에 갈거야. 널 보자마자 칼로 찔러 죽여 버릴거야. 그리고 네 피부를 벗겨서 지갑으로 만들어 들고 다닐거야"라고 협박했다. 뿐만 아니라 서세원은 매니저를 시켜 선배의 주소를 찾아내 서정희, 서동주, 매니저와 함께 그 집에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 앞에 아내와 딸의 무릎을 꿇렸다.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에서 서동주씨는 어린시절에 대해 "슬프고 아픈 일들이 넘쳐 흐른다"고 떠올렸다.
서동주는 책에서 "네다섯 살 됐을 때 일이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아빠는 안방 방문을 걷어찼다.
굉음과 동시에 방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아울러 "또 다른 날 저녁, 외할머니와 아빠가 기절한 듯한 엄마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아빠는 엄마의 얼굴과 몸에 찬물을 뿌리며 소리를 질러댔다"고 썼다. 서동주는 그 모습을 보는 외할머니의 표정이 미묘했다고 회상했다.
서동주는 "아빠는 엄마를 아파트 지하에 있는 요가 룸으로 불렀다.
불륜을 들킨 아빠가 집을 나간 지 두 달 만이었다. 아빠는 '이혼을 해줄 바엔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엄마 목을 졸랐다. (…) 엄마는 극심한 공포감에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아빠는 엄마의 다리를 질질 잡아끌어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아빠의 수족인 두 남자까지 합세해 엄마를 구둣발로 밀었다. 엄마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 과정에서 서동주는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딸로 성장했다.
서동주는 "나는 엄마가 홀로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이상, 적어도 단 한 사람에게만큼은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엄마의 '단 한 사람'이 되었다고 썼다.
당신도 ‘이방인’처럼 혼자 겉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가정 불화’, ‘이혼’, ‘빈털터리’, ‘백수’, ‘경단녀’ 시절을 겪으며 30대에 홀로 타국에서 ‘이방인’이 된 서동주!
그녀가 이방인처럼 겉도는 혼자들에게 보내는 따스한 위안의 프리 허그!
서동주는 ‘빛 좋은 개살구’다.
겉으론 ‘스타 2세’, ‘금수저’, ‘엄친딸’로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론 평생 가십에 시달리며 가정 폭력을 겪은 상처투성이! 만 13살에 미국으로 떠난 소녀는 자립을 위해 매일 이불 속에서 스탠드를 켜고 울며 공부했다.
MIT를 졸업하고 고향인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지만, 교수가 되라는 아버지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와튼 스쿨에 진학했다. 유일한 탈출구로 선을 본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했고, 당시 남편이던 이를 따라 여러 도시를 떠돌다 어느덧 30대가 되어 타국에서 홀로 어른이 되었다. 엄마의 편을 들다 아버지와 절연하고, 이혼 후 빈털터리로 상처뿐인 삶을 살다 ‘경단녀’에서 세계적 로펌의 변호사가 된 그녀!
누군가에겐 가벼운 가십일지라도 그녀에게는 삶을 누르는 비극이었다.
‘이방인’처럼 겉도는 혼자들을 위한, ‘파란만장’ 서동주의 따스한 프리 허그!
저자 : 서동주
어려서부터 일기 쓰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일기장을 아무리 숨겨도 기어코 찾아내 읽고, 마음에 안 들면 혼내는 아빠 때문에 중단해야 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피아노와 미술을 배웠지만, 수학이 좋아서 MIT 수학과에 편입했고, 독립하기 위해선 취업이 우선이라 와튼 스쿨에선 마케팅을 전공했다.
아빠와 절연하고 이혼 후 빈털터리, 백수가 되었을 때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야 인생을 스스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19년 만에 블로그에 다시 일기 쓰기를 시작하며 ‘꿈’을 꾸게 되었다. 마침내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변호사의 꿈을 이룬 지금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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