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따로국밥, 원조를 찾아서
길을 걷다 보면 흔히 원조라고 수식어를 단 국밥 집이 참으로 많습니다.
원조 뒤에 따라붙는 이름이 꼭 할매인 것이 국밥은 할매가 끓여야 제 맛이라는 뜻인지, 그만큼 오랜 전통을 이어온 손맛이라는 것인지 하여간 버스에서 내려 한 블록만 걸어가도 원조 할매 국밥, 원조 진배기 국밥, 원조 원할머니 국밥.... 원조 순대국밥, 원조 돼지국밥, 원조 소머리국밥...
추운 날 뼛속까지 찬바람이 들고 귀가 얼얼할 때 뚝배기 한 사발에 하얀 쌀밥 한 수저 푹 담갔다가 고기랑 얽혀있던 우거지 건져 올려 입김 훌훌 불며 입천정 데일만큼 뜨거운 국밥 한 그릇 뚝딱하고 나면 배가 든든하니 뿌듯하기까지 한 국밥 한 그릇!
따로국밥/ 이하석
국밥 먹기란 얼마나 성급한가?
선 채로 먹건 앉아서 먹건 그 뜨거움에
숨을 몰아 쉬면서
말아서 후딱 해치우느니
그러니, 숨을 돌리기 위해
국 따로 밥 따로 해서
국에 밥을 말아먹건,
밥 먹고 국을 떠먹건
느긋하게 해결하도록
따로국밥을 낸 거다.
얼큰 화끈한 기질 아닌가.
뼈 우려낸 국물과 밥은 한 기운으로
자욱한 김에 싸인다.
이 분지에서는 누구든
그 기운으로 일어선다.
평상에 앉아서 맹더위와 싸울 때나,
장터 언저리에서
매서운 추위와 너나들이할 때
그 뜨겁고 매운 걸 한사코 들이켠다.
서로 만만치 않은 삶을
그런 자욱함으로 휩싸 버린다.
ㅡ이하석, '따로국밥'
지난주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배종옥 대비마마가 며느리인 중전 신혜선이 야심 차게 올린 국밥을 보고 이런 천한 음식??이라는 표정을 짓다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체면을 구기고 한 수저 뜨다가 입가에 묻은 밥풀마저 아까웠다는 드라마의 한 장면.....
국밥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우리 민족 특유의 식사법이랍니다. 보통의 국밥이 국에 밥을 말아 나오는데 반해 대구의 따로국밥은 국과 밥이 따로 나와서 '따로국밥'이라고 하며, 주로 5일장에 오는 외지의 상인에게 제공되었던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따로국밥은 소뼈와 소 무릎뼈를 12시간 이상 고아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 쇠고기를 넣고 1∼2시간 동안 더 끓여 소금·후추·파·고춧가루·마늘 등의 양념을 넣고 다시 30분 정도 끓여서 국과 밥을 따로 담아냅니다.
대구의 유명한 음식 문화 중 하나가 따로국밥!!!
따로국밥의 원조는 대구시 중구 중앙로역 부근에 위치한 '국일식당'인데 정식 간판 이름은 '국일따로국밥' 이예요. 깍두기가 정말 맛있고요. 도로변이라 버스 타고 지나가면 보여요.
따로 국밥의 유래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몰려드는 대구에서 양반들이 하인들이나 먹는 국밥을 같이 못 먹겠다면서 국 따로 밥 따로 달라고 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벌건 국물에 고기와 시레기 우거지 깍두기 6천 원할 때 먹어보고 시내 나갈 일이 별로 없어 요즘은 먹어보질 못했네요.
국일 따로국밥은 1946년 부터 쇠고기 국밥을 조리해 왔고 지금은 그 딸이 원조 기술을 전수받아 64년째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24시간 영업을 했는데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어쩌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변론을 맡았던 「부림사건」을 배경으로한 영화「변호인」이 관객 1천133만명을 동원하는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영화 「변호인」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바로 국밥이다. 가난한 사법고시 준비생의 한 끼를 든든하게 채워주었던 음식, 국밥 한 그릇 사 먹을 돈조차 없어 밥값을 내지 않고 달아나버린 손님을 탓하지 않고, 몇 년 뒤 성공해 나타나 밥값을 치르려고 하자 “돈이 아닌 사람으로 갚는거다”며 돈을 받지 않는 주인 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는 음식, 빽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서민들이 뜨끈한 국밥 국물에 막걸리 한잔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음식이 국밥이다.
어쩌면 국밥은 가난에서 태어나 가난을 끌어안은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이처럼 서민과 애환을 같이해온 국밥은 어디에서부터 유래되었을까? 국밥의 어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몇가지 설중 가장 유력한 설로 꼽히는 것은 설렁탕의 어원으로 조선시대에 임금이 직접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제사를 지냈던 「선농단」에서 제사를 마치고 잔치를 열었을 때 농민들을 위해 고기국을 내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국밥의 유래로 보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조선시대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보부상들이 시간을 아끼려고 주막에서 빠른 식사를 하기 위해 간단하게 먹기 쉽도록 고안해 낸 음식이 국밥이라는 설도 있다.그런가 하면 가장 최근 설로는 한국전쟁당시 돼지뼈로 우려낸 육수에 밥과 고기를 말아 먹는 음식문화가 시작되었는데 이를 국밥의 유래로 보는 설도 있다. 즉 말해서 돼지국밥은 난리통에 비싼 쇠고기 대신 값싼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인 돼지고기로 배를 채우고 영양을 보충해야 했던 가난했던 시절에 만들어낸 최상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가난속에서 태어난 국밥은 지금도 여전히 한 그릇에 5천∼6천원하는 저렴한 가격으로 1만원이면 막걸리 1통과 더불어 서민들의 배를 든든히 채울수 있는 서민들의 다정한 벗이 되고 있다. 필자도 퇴직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이곳 저곳 5일장터를 찾아 뜨끈 뜨끈한 국밥 한그릇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담소를 나누는 것을 생활의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국밥은 지역마다 조리방법이 다르고 종류도 다양하다. 서울이나 경기도에서는 국밥을 주문하면 순대국밥이나 소머리국밥을 내놓는다. 제주도도 순대국밥을 내놓는데 서울이나 경기도와 다르게 콩나물 등 야채가 듬뿍 올라간다. 경상남도 및 부산지방에서는 국밥을 이야기하면 돼지국밥을 내놓고 경상북도 및 대구지방의 국밥은 파를 가득넣은 소고기나 선지를 이용한 소고기 국밥이 일반적이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콩나물 국밥을 내놓고 평안도에서는 고기국물에 녹두전과 두부전을 올린 온반이 유명하다. 국밥은 원래 국과 밥의 구분이 없이 말아서 나오는데 국과 밥을 따로 내놓아 먹는 사람이 말아 먹도록 하는 것을 따로 국밥이라고 한다. 따로국밥의 유래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 몰려드는 대구에서 양반들이 하인들이나 먹는 국밥을 같이 못 먹겠다면서 국 따로 밥 따로 달라고 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따사로운 봄날 시골장터 국밥집을 찾아 다니며 봄의 정취도 느끼고 화사한 봄꽃도 구경하면서 장터 국밥집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김치 깍두기를 곁들인 뜨끈 뜨끈한 국밥에 밥 한그릇 말아 다정한 친구들과 한잔의 막걸리를 걸치면서 가는 봄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 글쓴이/ 이진 前)영암군 신북면장前)전라남도 노인복지과장前)완도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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