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대량생산 시작, 포드 & 우리나라 최초 SUV 모델 {시발}
자동화와 대량생산을 말하면 자동차왕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를 떠올리는 게 보통이지만 실은 독립전쟁 직후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를 뒤흔든 포디즘(Fordism, 컨베이어시스템에 의한 분업화, 기계화된 대량생산 체제)도 대량생산의 시초가 아니라 누적된 결과다.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사람이 이동하며 일하는 작업장과 달리 도축장에 걸린 쇠고기 덩어리들이 움직이고 사람은 제자리에서 작업하는 광경을 목격한 직후였다. 하지만 컨베이어시스템을 포함한 전 공정의 생산자동화를 고민하게 된 계기는 에번스가 설치한 자동 제분소의 설비를 견학한 다음부터다. 실제로 포드시스템이 출현하기 직전까지 포드의 생산시스템은 4층부터 시작해 1층에서 완성차가 나오는 구도로 에번스의 자동 제분공장과 같은 개념이었다.
포드시스템의 탄생은 끊임없는 혁신과 미국식 합리주의의 소산이었다. 1903년 회사 설립 당시부터 포드는 공구와 부품을 규격화하고 공정을 단순화시켰다. 휘트니, 콜트로부터 내려온 규격화를 더욱 진전시킨 것이다. 그 결과 포드는 경쟁업체의 절반 가격에 차를 내놓을 수 있었다. / David Hounshell, op.cit., p.215.
1907년에는 공장의 경사면을 따라 4층 차체 제작, 3층 바퀴 부착과 도장, 2층 각 부문의 세부 조립, 1층 최종 검사로 이어지는 연속 공정을 선보였다. 앞서 살펴본 컨베이어시스템의 장점을 결합해 대량생산 체제인 포드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에서는 생산기술에 에뮬레이션(emulation)이 일어났다. 자동차를 예로 든다면, 미국은 특별히 어떤 자동차를 발명한 것도 아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동차 산업을 일으킨 나라는 프랑스였다. 미국은 프랑스의 자동차를 가져와 모방하여 T형 포드라는 값싼 자동차를 대량생산했다. 그리고 자동차라는 것의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이처럼 미국은 에뮬레이션에 의해서 강력한 생산기술을 움켜쥐고 팍스 아메리카나라 불리는 패권체제를 확립해 나갔던 것이다.
포드사의 자동차 생산과정과 노동관리방식은 이후에 “포디즘”(Fordism)라 불릴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그 기원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1870년대 중엽에서 1890년대 중엽까지 물가하락과 낮은 성장률을 수반하는 “대불황”(The Great Depression)을 경험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의 기업들은 기업집중을 통해 기업 간의 경쟁을 통제함으로써 총이윤의 증가를 보장받는 동시에 생산비를 절감하거나 생산성을 제고하여 이윤율을 증가시키는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 Ibid., p.266.
포드가 1908년부터 추진했던 “모델 T”는 복잡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고, 새로운 합금강을 사용하여 견고할 뿐만 아니라, 작업의 세분화와 작업 공구의 특화에 입각한 대량생산 방식으로 저렴하게 제작되어, 출하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1913년에 포드사는 산업사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함으로써 대량생산·대중소비 시대의 개막을 선포하였다. 포드시스템이 도입된 뒤 포드 모델 T 승용차의 1대당 조립 시간이 5시간 50분에서 1시간 38분으로 줄어들었다. 생산량도 1910년 1만 9000대에서 1914년 27만대로 늘어났다. / *Maury Klein, op.cit., p.206.
이러한 대규모 컨베이어 설비는 공업 생산의 혁명적인 전환이었다. 컨베이어 생산 방식과 고임금, 그리고 엄격한 관리 방식이라는 포드 시스템은 이후 자동차 공업 발전에 있어 모범이 됐다. 이는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진보성을 지니는 ‘대량 생산’의 산업혁명으로, 신속하게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켰다. 컨베이어 생산 방식은 생산 원가를 대폭 낮춰 T형자동차의 소비자가 가격 역시 1909년의 950달러에서 1914년에 490달러로 인하됐고, 1916년에는 360달러로 인하되었다.
미국의 도시와 시골을 가릴 것 없이 모델T 승용차로 가득할 만큼 포드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모델T 포드차는 다른 자동차에 비해 가격이 10배 정도나 저렴했으며, 전성기에는 전 세계 자동차의 68%를 차지하였다. 1920년대부터 미국사회는 풍요한 경제와 포드 자동차를 배경으로 자동차 대중화 시대에 돌입하여 1930년에는 가구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게 되었다.
*David Hounshell, op.cit., p.262. 발췌/초강대국 미국의 역사적 비밀(은은기 저)
시발(始發) ㅡ첫 시작이라는 뜻.
다시 보고 싶은 국산 SUV 1위 ~ 5위
https://auto.v.daum.net/v/AZIYF2Tqk9
최근 레트로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다시 불고 있는 올드카 리스토어 바람도 이러한 시대 흐름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모터그래프도 9월 1일부터 29일까지 약 4주간 홈페이지에서 ‘다시 보고 싶은 국산 SUV’를 주제의 독자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총 1985명이 참여해 각자 다시 보고 싶은 국산 SUV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자동차 전문 매체 모터그래프 제공)
다시 보고 싶은 국산 SUV (올드카, 자동차 리스토어의 주역들)
1위 쌍용차 무쏘, 2위 쌍용차 코란도 훼미리, 3위 현대차 갤로퍼, 4위 기아차 레토나, 5위 국제차량제작 ㅅ ㅣ - 바 ㄹ (발음주의)
포드(Henry Ford)
미국의 기술자이자 사업가로 포드 모터 컴퍼니의 창설자이다.ⓒ Hartsook/wikipedia | Public Domain
포드는 디트로이트 근처의 한 농가에서 아일랜드계 이민 2세로 태어났다.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디트로이트의 한 기계제작소의 도제로 들어가 3년 동안 내연기관 제조를 배웠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와 웨스팅하우스기관회사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면서 농장 한 구석에 작은 기계수리점을 내어 농장기계들을 수리해주거나 낡은 잔디깎이 기구를 농장용 트랙터로 개조해주는 일로 생계비를 벌었다. 8년 뒤 디트로이트로 돌아가 에디슨사의 주임기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연구하던 끝에 1896년에는 4륜마차 차체에 가솔린 기관을 장착한 '쿼드리사이클'이라는 자동차를 완성했다.
그후에도 몇 대의 자동차를 더 제작했으나 그때마다 자동차 제작 연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팔곤 했다. 1899년 몇몇의 후원자들과 함께 디트로이트자동차회사를 설립했으나 의견차가 심해 마침내 1902년에는 회사를 떠났다. 그후 모델 999을 포함하여 몇몇 스포츠카를 제작했다. 1903년 일반 소액주주들과 함께 2만 8,000달러의 자본금으로 [포드자동차회사]를 설립했다.
1908년 [T형 포드]를 선보였고 이 모델은 그후 19년 동안 미국·영국·캐나다 등지에서 총 1,700만 대를 판매하여 전세계 차량생산의 절반을 차지했다. 1913년에 도입한 일관작업공정으로 T형 포드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어 판매가격을 낮출 수 있었으며 그결과 중산층들도 구매자로 포섭할 수 있었다.
1914년 포드사는 최저임금을 1일 5달러(당시 자동차업계 평균최저임금은 2.34달러임)로 정하고, 기존 1일 9시간 노동을 8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3교대로 공장을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양과 효율에 기초한 저렴한 판매로 시장구매력을 높여 판매량을 증가시킨다는 포드의 경영철학은 규모의 경제에 기초해 단위생산비용을 낮추고, 최저생계비를 상회하는 생활임금으로 노동자들의 잠재적인 구매력을 높임으로써 사회구조 자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daum백과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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