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영천 호국원 다녀왔습니다

by Happy Plus-ing 2020. 6. 7.
728x90

 

그래픽/이영은 기자

 

영천호국원 다녀왔습니다.


망전필위(忘戰必危)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장 사마양저는 “나라가 아무리 강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아무리 태평해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고 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순국선열의 희생 위에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북한의 공격으로 시작된 6·25전쟁 때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병들이 희생했습니까. 그 때 전쟁을 일으킨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와 미사일로 남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현충일입니다.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을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저희 시아버님을 영천호국원에 안치하게 된 사연입니다 -

 


육군본부 귀중-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님의 군번을 확인하고 병적 확인서를 발급받기를 원하여 군번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힘들고 번거로우시겠지만 꼭 확인하여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희 아버님의 호적상의 함자는 *[박 * * ]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시고 개별 주민등록표에는 마지막 * ['관'자가 '권'자로] 기록되어 군 복무 당시에도 주민등록표의 '박 ** '이란 함자로 근무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민등록 번호는 28***** - 1******
입대 당시 본적은 경북 상** **면 ** 리 ***번지
입대 영장을 받으신 주소는 경북 상** ** 면 ** 1리 이십니다.

신병 훈련은 제주도에서 받으셨고요.
군번은 연로하신 어머님이 기억하고 계시기론 9 ****??339(1?)이라고 하시는데 중간과 마지막 번호가 9인지 1인지 잘 모르시겠다고 하십니다.
근무 부대는 5 사단.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하신 걸로 기억하십니다. 1952년에 입대하셔서 만기 복무를 채우시고도 2 ~ 3개월 더 근무하시고(56년 즈음에 ?) 전역하셨다고 기억하십니다.

 


우연히 6.25참전했던 용사들을 호국원에 안장해드린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이미 고인이 되신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저희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좋은 곳에 모시기를 원하셔서 희미하지만 그 옛날 새색시였을 적 남편을 전장터로 보내놓고 가슴졸이며 살았던 그 세월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이미 반백년이상 지난 세월인데도 군번을 기억하시고 근무 부대와 백마고지 전투를 알고 계신 것을 보고 평소에도 기억력도 좋으시고 지혜로우신 편이었지만 정말 저희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득, 부부란 참 찐한 전우애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긴가민가 접수해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육군본부에서 회신이 왔습니다.

귀하께서 육군본부로 문의하신 민원에 대한 처리 결과 회신입니다.


귀하께서 부친의 병적확인을 위해 제시하신 내용(박* * , '28.* . ** 生, 경북 상* * ** **1리 928****, 제주도훈련 5사단 근무)을 바탕으로 병적자료를 확인한 결과 다음과 같이 회신합니다.

* 병적확인 내용
- 계급 : 상병
- 군번 : 928****
- 성명 : 박 * *
- 입대 : '53. 1. 2
- 만기전역 : '55. 8. 29(5사특( * ) 2 ** 호

각종 민원업무 처리 및 병적확인 검증 절차 등의 어려움이 많아 회신이 늦어 죄송하게 생각하며 귀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육군전자민원창구나 우편으로 문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우편주소: 충남 계룡시 남선면 부남리 사서함 57호 육군민원실 . 안장 절차
○ 신청방법 : 국립묘지 안장관리시스템(www.ncms.go.kr) 또는 가까운 보훈(지)청 방문후 인터넷신청
-------------------------------------------

 


그리하여 시아버님을 영천호국원에 모셨습니다.

 

 

 

 

현충일ㅡ어느 학도병의 편지

서울 동성중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도병으로 참전한 이우근 학생의 편지는 우리의 마음을 울립니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명은 될 것입니다.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그는 이 편지를 부치지 못하고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앞 벌판에서 전사했습니다. 전사했습니다. 그토록 보고싶은 어머니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한 약속 지키지 못하고 전사했습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