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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서수용 선생님-스승이란 존재는 그런 것이다

by Happy Plus-ing 2020.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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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용 선생님-스승이란 존재는 그런 것이다.

 


미스터 트롯 김호중 씨가 컬투쇼에 나왔습니다. 원래 컬투쇼 팬이기도 했지만 김호중씨가 나온다니 기를 쓰고 들었지요. 서수용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적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찡합니다. 돈이 없으면 음악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을 그때 다른 학교(김천예고)에 재직하시던 은사님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답니다.
서수용 선생님께서 김호중의 노래를 처음 듣고 하신 말씀이"야야, 네가 어떤 학생인지도 모르겠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너는 평생 노래로 먹고 살 거다"라고 하셨답니다. 진짜냐고 거듭 묻는 제자에게 선생님 자신의 전 재산을 걸어도 좋다는 말씀은 몇 번이나 들어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지요. 그 한마디가 김호중의 오늘을 있게 한 에너지가 되었다고 하네요.
라디오를 통해서 김호중 씨의 신곡 '나보다 더 사랑해요'와 미스터 트롯 때 불렀던 '고맙소'와 '태클을 걸지 마'를 불러줘서 너무 신나고 행복했어요. 그 와중에 호중씨가 은사님에게 드리고 싶은 선물을 맞추는 퀴즈 시간이 있었는데요. 청취자가 그게 뭔지 정답을 맞히는 시간이었어요. 은사님의 전용 경비행기를 사드리는 오답에서부터 집, 학원 등 얼마나 웃기든지요. 김호중 씨가 미리 준비한 답은 <자동차> 였어요.
왜 자동차를 사드리고 싶냐고 하니까 선생님께서 매일 대구에서 김천까지 자가용으로 등하교를 시켜주셨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동차를 사드리고 싶었다고 하네요. 정말 부모보다 더 찐한 제자애로 훌륭한 스승과 제자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하도 유명한 이야기라 써놓고도 계면쩍네요. 제 이야기 잠깐 하려구요 죄송합니다.

 

 

 


우리들도 각자 생각나는 선생님들이 있지요. 이름과 얼굴이 가물가물한 선생님들 말구요. 꼭 학교 선생님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 있어서 잊히지 않는 참 스승을 가졌다면 행복할 거예요. 간혹 연세가 드신 옛 스승님을 모시고 제자들이 고마움의 자리를 만들어서 옛이야기와 추억의 그 시절로 돌아가는 장면들을 가끔 보면 참 부럽습니다.

 

 



13살 차이 나는 막내동생이 태어나던 날
그땐 사는 게 참 어려웠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러한 시절이 있었을 터이고 그때 그 시간들이 오늘의 내가 있게 한 근원적인 힘이 되었을 것이니 이젠 의연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먹고 잤습니다. 여름이면 부모님 중 한 분이 부채로 모기를 쫓아주시고 겨울이면 서로의 온기로 브로크 벽을 뚫는 칼바람을 막았습니다. 기침감기가 심해서 긴 긴 겨울밤이 괴로우면 식구들 깨울까 봐 마당 한편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한꺼번에 기침을 뱉고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썼더랬습니다. 밤새 책이 읽고 싶은데 불빛 감추느라 뒤집어쓴 낡은 토퍼 속에서 스탠드 불빛으로 빌려온 책 침 묻히지 않게 고이 넘기며 마음 졸였어도 슬프거나 낙심되지는 않았습니다.
새로 막내동생이 태어나던 날 아침. 엄마의 산통이 시작되자 중학생인 나를 붙잡고 석유곤로에 물 한 대야 끓이게 하고 가위를 담아 삶으라하고 동네 아줌마 모셔오게 하고 그렇게 단칸방에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습니다. 그 날 학교도 못 가고 온 방 헤매며 죽을 거 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마음 졸였어도 식구가 하나 더 늘어 좁아질 잠자리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늦게 결석한 이유를 전해 들은 담임선생님이 미역과 고기를 사 가지고 가정방문 오셨을 때 마땅히 앉을자리가 없었어도 그리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는 형편을 둘러 보신 존경하던 예쁜 선생님의 입에서,
"얘, 너 대학 못 가겠는데 실업학교(산업체에서 운영하는 학교-낮에는 일하고 야간에 수업)나 가거라" - 했을 때 그때 가슴에서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게 있었습니다. 기대할 것이 없다고 ~~~~ 사형선고 같은 그 말 한마디에 내 푸르렀던 하늘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실업학교가 뭐 어떻다는 말이 아니고 나의 중학교 시절은 운동 빼고는 다 잘한다고 칭찬받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은 곧 상처가 되었더랬습니다. 없는 살림살이에 동생은 줄줄이 셋이나 되고 객관적으로 보면 누구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지만, 꿈만 오지게 꾸던 소녀에게 현실을 깨우쳐주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그래도.... 스승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요즘 특별히 더 느끼고 삽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호중 씨의 스승님께 드리는 노래 <고맙소>는 들을 때마다 눈물이 솟구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 형편은 지금 이래도 뭔가 열심히 하다 보면 방법이 생기겠지'

'대학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넌 총명하고 성적이 아까우니 열심히 해보자'라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자라는 아이의 기를 꺾어놓는 건 교육자로서 좀 아니었다 싶네요. 그 말 덕분에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보다 좀 나아졌으려나요? ^^
지금 생각해보면, 돌이켜보면 영 방법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현실적인 조언이었을 텐데 그 말 한마디에 너무 쉽게 용기를 잃고 상처 받고 돌아앉아 자책하고 원망하고 그랬던 것을 후회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상업학교에 진학했고 졸업하면서 은행에 입사하여 내리 동생들 3명 소위 SKY 대학 다 보냈습니다. 동생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나는 요즘 참 진중하게 아름답고 고상하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늙어가는 법을 공부합니다. 살아온 굴곡이 워낙 많았던 반면 고마운 사람도 너무나 많았음을 알기에 은혜를 갚으면서 살고 챙겨주면서 살고 도와주면서 살고 위로해주면서 살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손 잡고 울어주는 참 이웃으로 살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입니다.
때로 나 역시 부지 중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 많았겠지요. 미안합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만남이 되어 주고 인생의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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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임철수 2001.11.17 20:12

    하늘이 무너져 내려 바다가 되었습니다.&lt;br&gt;안녕하세요!&lt;BR&gt;
    가을가뭄이 해갈되었네요.&lt;BR&gt;
    님의 하늘이 무너져&lt;BR&gt;
    내려서 바다가 되었습니다.&lt;BR&gt;
    찾는 모든이의 아픈 꿈을 품었습니다. &lt;BR&gt;
    '절망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란&lt;BR&gt;
    글도 기억속에 살아나네요.&lt;BR&gt;
    한 주일 출장 후에&lt;BR&gt;
    찾아 뵈었습니다.&lt;BR&gt;
    어린시절 아픈 다음엔&lt;BR&gt;
    많이 자랐는데&lt;BR&gt;
    님은...&lt;BR&gt;
    &lt;BR&gt;
    이웃집 아저씨&lt;BR&gt;
    '아름다운 바다'드림&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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