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 한훤당 고택을 가다
한훤당 고택은 동방5현의 수현인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11세손 도정공 김정제 선생이 1779년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서 현재 위치로 이주하면서 지금까지 종택의 기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종택 내 사당은 지난해 대구시 문화재(문화재자료 제57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고택 일부를 리모델링 해 ‘한훤당 고택 by soga’라는 명칭으로 한옥카페와 한옥스테이 등 다양한 전통문화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무료며 문의는 달성문화재단 문화정책실 053)659-4285로 하면 된다.
4백년된 은행나무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에 심취하여 ‘소학동자’라 자칭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김굉필은 단종 2년(1454) 5월, 한양 정릉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증조부 때부터 현풍현을 주 근거지로 삼았으나 조부 김소형(金小亨)이 개국공신 조반(趙반)의 사위가 되면서 한양에도 연고를 갖게 됐다. 아버지 김유(金紐)는 어모장군 행충좌위사용(禦侮將軍 行忠佐衛司勇)을 지냈고, 어머니는 추원부사(樞院副使) 한승순(韓承舜)의 딸 청주 한씨다.
김굉필이 살았던 조선 전기는 왕권 교체와 정치 문제 등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특히 나라의 근간을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삼국시대 도입된 불교는 이땅에 1천년 이상 뿌리내린 터라 유교적 질서의 기반 확립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뜻있는 선비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은 시대였다.
김굉필은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영기가 빼어났으며, 정의감이 투철했다고 한다. 무례하게 굴거나 남을 조롱하는 이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로잡아야 했다. 나이가 많아도 예외는 없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굉필 [金宏弼] (두산백과)
소학세가는 소학의 대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소학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집이다.
커피와 곁들여서 먹는 수수지지미가 여기선 추천 메뉴인듯 했다. 어릴 때 먹던 그 맛은 아니어도 추억으로 먹는 맛이니까. 그밖에 고구마라떼, 가래떡 츄러스 등 젊은이들이 좋아할 메뉴들이 있구요. 데이트코스로 한번쯤은 가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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