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애지중지했던 나의 것들을 훌훌 놓아버리고 떠나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을 만큼 아직은 충분히 젊으십니까?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 하나는 나는 반드시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포기하고, 가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태양이 뜨고 새로운 신문이 도착하고 손에 쥔 한 장짜리 세계 속에 펼쳐지는 새로운 소식들은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는 이미 죽었다는 부고장으로 도배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찰나에 사라지는 허망한 주검이든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놓여나길 기다리는 애처로운 생명이든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머지않아 겪어야 할 나의 일임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끝날이 오면 아이를 밴 여자들과 젖먹이를 가진 자들이 피할 여력이 없다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내일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죽음이 곧 모든 것의 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호흡이 끊어짐과 동시에 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生의 연장이며 육체는 없어져도 존재는 살아 남아 나를 알던 이들이 나를 증언하며 추억해 줄 것이고 함께 지냈던 이들의 마음에 남아 사랑받을 것이며 그들의 生 또한 마감되기 전까지는 가슴 한켠에 살아 있을터입니다. 아마도 죽음은 내 인생에 가장 극적인 순간을 연출하게 될 것입니다. 위선과 가증스러운 껍질을 벗어버리고 쇠약해진 영혼 건져 헹구어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고픈 현실을 걷어내고 내 인생의 제1막을 다소곳하게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가장 진실하게 다가와야 하고 누군가 강요해서도 안되며 타의에 의해서 내 인생이 마감되어져선 안됩니다. 가장 진실되게 가장 진지하게 내 인생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온전히 영혼의 참 평안과 자유를 만끽하게 될 클라이맥스이기에 준비된 모습으로 그 시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건강하십니까?
자신있게 예 나는 건강합니다-라고 장담할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만 그래도 우리 좀 젊었을 때는 천년만년 살 줄 알고 호기롭게 세월아 네월아~~ 하고서 살았지 않았습니까. 한 번 태어나면 죽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섭리인데 남들은 다 죽을지라도 나는 절대 안 죽을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이 미련한 우리 인생 아닙디까.
생로병사를 내맘대로 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 그나마 몸이 건강할 때 병원을 찾아가서 건강진단을 받거나 챙기는 것도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입니다. 주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이 병마에 시달리면서 어찌 주님의 일을 하며 기쁘시게 할 수 있겠는지요. 그러나 몸이 건강할 때는 시간이 없다 일이 바쁘다 하면서 병원을 찾지도 않고 돈을 들여서 건강진단을 받지도 않습니다.
언제 병원을 찾아갑니까? 가슴이 쓰리고 먹은 것이 올라오며 오른쪽 배가 아프고 왼쪽 복부가 뜨끔뜨끔할 때 비로소 병원을 찾아가 종합진단을 받는 것입니다. "진단 결과 당신은 위궤양입니다." "당신은 간암입니다, 폐렴입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입원 수속을 밟으십시오, 수술비는 약 500만 원가량이 들 겁니다" 이런 소릴 들으면 그제야 없던 시간도 당연히 생기고 없다 없다 하던 돈도 어디서 어떻게든지 마련해서 수술하는 걸 봅니다. 이럴 때에 바쁘다고, 돈 없다고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 별반 못 보았습니다. 수술비가 300만 원이 아니라 5 천만 원이래도 살 수만 있다면,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만하는 것이 삶에 대한 애착이요 본능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때가 늦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건강 또한 그러하답니다. 사실로 평안하고 만족스러운 날에는 좀처럼 기도하려고 들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게을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언제 기도하게 됩니까 내 인생에 빨간 불이 켜지고 급박한 사이렌이 울릴 때 사생결단 떼를 쓰듯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미 때늦은 기도입니다. 하지만 때늦은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는 분 비상등을 켜고서 달려오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수많은 고난과 고비와 환란과 억측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위기들이 나를 더 많이 위축시키고 비참한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고 생각했었지만 내 방법대로 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대로 끌고 나가셨던 그 사랑이 간절하게 고백됩니다.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감사한 일들이 많고 어제보다 오늘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에 감사한 아침입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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