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탕수육
혹시 아세요?
밥하는거랑 요리하는 거랑 틀리다는 거요.
밥상 차리는 것이 요리하는 것인줄 알았던 멍충이가 저였습니다.
부끄럽지만 밥을 한번도 안해보고 시집이란 걸 간 죄인이지요.
어느 혹독하게 추운 겨울날, 웨딩마치 울리며 눈물 콧물의 지옥문?으로...
나이꽉찬 신부였기에 결혼이 환상이 아닐줄은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죽어라고 요리[?]를 해 올렸지만 내가 차린 밥상은 밥상이지 요리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밥상과 요리의 현격한 차이]를 저는 몰랐던 거였습니다. 사랑으로 대충 눈감아주며 먹어주리라 기대했던 내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던가를 시댁에 가서 몇달간 살아 보고서야 그만 입이 떡 벌어지는게 새 신랑의 반찬투정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이구야. 왜 사느냐? 먹기 위해 산다. 왜 돈버느냐? 먹기 위해 번다. 신조가 그럴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입으로 들어가 배만 부르면 되는 줄 알았던 가난했던 슬픈 과거가 하루 세번 끼니때만 되면 당혹스럽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중간단계는 생략합니다.
처절했던 시집살이 얘기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하게 남겨둘랍미더------
사랑의 탕수육
학생이었던 동갑신랑을 대신해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놈의 등록금 마감일은 얼마나 자주 돌아오는지.. 서무실에 갖다주는 돈이 맨날모자랐습니다. 더불어 생빚이 늘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큰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유니폼이 맞지 않게 될 무렵 사표를 내고 이왕이면 돈 안들이고 요리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은 생각에 식당 카운터로 취직했습니다.
엄청 북적대는 소위 장사 자알 되는 식당이었지요. 메뉴도 다양해서 중국요리부터 시작해서 양식음식까지 두루두루 그렇게 많은 메뉴를 취급하는 곳은 처음 보았습니다.
어느날 부른 배로 카운터에 앉아있기 민망했던 나는 스스로 주방 찬모 역할을 자원했습니다.
거기서 주방장을 만났습니다. ? 얼굴도 기억 안나는데 탕수육은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 주방장이었지요.
몇 살인지도 모르겠는데 총각이었던건 확실해요. ㅎㅎ
주방에서 내 이름은 [작은 아지매]였습니다. 큰 아지매는 당연히 주인아줌마 우리 형님이였겠지요. 주방에서 나는 하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원래 낯가림도 심했었지만 배가 불러 숨조차 쉬기 부담스러웠기에 말하는 에너지조차 아껴야했습니다. 북태산같은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가슴아랫부분은 죄다 젖어버리고 복부의 피부는 따끔거려 잘 걷지도 못했습니다.
주방에는 먹을게 널렸습니다. 임신하면 먹고 싶은게 좀 많나요? 그래도 남의 것이라 손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 내가 불쌍해보였을까...
홀에서 탕수육 하나요~~~ 하고 외치면 주방장이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 쓱쓱 칼질하고 녹말가루 묻히고 지글지글 튀기고 주걱소리도 요란합니다. 홀에 음식이 나가고 나면 어느새 작은 접시 하나에 제 몫의 탕수육이 슬그머니 와 있네요. 쥔 모르게...ㅎㅎ일하면서 한 두점 집어먹는 그 탕수육의 잘근잘근 씹히는 달콤한 맛..
오전 10시쯤 되면 짜-장을 볶아요. 중국집 근처를 지나다가 짜-장 볶는 냄새 정말 배고플 땐 뱃속의 거지가 환장하잖아요. 첫 짜장면의 시식은 꼭 저한테 시켰어요. 가끔 '요리'라는 것도 한 가지씩 가르쳐줬구요.
마지막 산달이 되었을 때는 임신중독이 와서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가려워서 잠을 못잘 정도가 되었어도 예정일이 임박할 때까지 일했어요. 내가 스스로 그만둘 때까지 아무도 일 그만두라 하지 않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했어요 모두들..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또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네요.
친정에 가서 아기 낳고 나중에 인사차 들렀더니 그 주방장 어디론가 옮겨가고 없대요.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안나는데 그때 그 기가 막힌 탕수육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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