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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아버지, 용서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

by Happy Plus-ing 200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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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용서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

 

당신이 울려 주지 않으면 종소리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당신이 노래 하지 않으면 그 노래는 노래가 아닙니다
사랑은 당신 가슴속에 묻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주지 않으면 사랑도 사랑이 아닙니다. - 메리 마틴 -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서 만나는 친정 아버지.
어제는 추석연휴 끝날인 주일인지라 서울의 아들네서 명절을 지내고 오신 부모님께 다른 날보다 신경써서 정중하고 부드럽게 인사 올렸습니다. 명절이라 특별히 갖춰 입으신 건지 아니면 가을 들머리에 뵈어서 그런지 오늘 입으신 감색 양복이 아주 잘 어울리셔서 새신랑 같으시다고 추켜드렸더니 계면쩍어하시면서도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으신듯 했습니다.
사실 연세때문에 치아가 좀 약해지고 말썽을 부려 그렇지 정말 정정하시고 나이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젊으십니다.
키도 크시고 피부도 하얗고 할아버지라고 불러드리기엔 쬐끔 미안할 정도로 한 인물 하십니다. 울 아버지.
누~~가 보더래도 젊을 때 마누라 속 깨나 썩혔겠다고 백발백중 짐작을 할 정도니까요. ^^
그래서 그런지 친정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이 늙으셨습니다.
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거든요. 누구말마따나 인물값하셨으니까요. ㅎㅎ

동생네 모두 평안하고 잘 있더냐고 안부를 물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어두워지시면서 - 삐쩍 말라가지고서리 밤낮 그리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것 같더라..- 하시며 뭔가 마음에 안드신다는 표정을 하고 계십니다.
하고 싶은 말 있어도 다 하지 못하시는 듯한 미진한 표정 있잖습니까?
4남매중의 맏딸 장녀입니다 제가.  직장을 시작으로 결혼하면서 둥지를 떠났던 객지생활을 청산하고 친정동네에 안착한지 어느새 7년여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 내려왔을 때보다도 훨씬 많이 늙으신 부모님... 사위의 눈에도 안쓰러웠던지.. 생전 하지않던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다음주에 산에 같이 가 드리겠습니다 - 하길래 왠일인가 싶어 남편을 바라보며 무어라 대꾸하려는데, 엄마가 가로챕니다. -이제 아랫도리 힘이 빠져 정상코스는 못 올라간다네-
원래 식구들에게는 말 수가 적으셨던 아버지는 아직도 맏딸인 제가 편치가 않아서 술만 드시면 -- 저게 맘에 걸려.. 쟈한테 제일루 미안해.. -- 하면서 우신다고 막내 제부가 전해줬었습니다.

부모자식간에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마는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한 번도 언급하지 못했던 묵은 상처가, 구정물 휘저으면 떠오르는 찌끼들같이 가슴을 할켜 명치끝 응어리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에 지레 퍼렇게 멍은 들고.. 아비가 아비로서 자식을 꾸지람할 것은 하고 나눠줄 사랑은 떳떳하게 나눠주고.. 그리해야 할 텐데, 가끔은 서먹서먹하기가 꾸어다 논 보릿자루마냥 아직도 편치가 못하다는 것은 분명 내 잘못이 큽니다. 어깨가 굽으시고 자식들 눈치나 살피는 아버지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 남들에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사람, 남에게 싫은 소리 죽어도 못하는 사람, 식구보다 친구가 더 귀중한 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셨습니다.
월급날 저녁엔 단골 대폿집에서 6식구의 생명줄이던 월급을 봉투째 날리고 오시기 일쑤였었고, 두 집 살림을 하시는지, 노름을 하시는지 집에 들어오시지 않는 날이 한 달이면 반은 넘었으며, 외박하고 들어오신 다음 날은 어머니를 우격다짐으로 제압하느라고, 어김없이 난장판이 되었던 아픈 기억들을.. 이젠 세월에 얹혀져서 죄다 잊었는데, 용서하고 말고 할 이야기도 아닌데, 당신 스스로 그저 죄스럽고 자식들에게 미안해 하는 터에, 한 번씩 늦가을 스산한 바람 한줄기처럼 빈 가슴을 훑고 지나갑니다.


그 화려하고도 다양했던 아버지의 취미생활(?)로 인해 저희 4남매가 겪었던 유년과 사춘기, 청소년기를 어찌 넘겼는지, 이제 거의 다 잊혀지고 추억으로 남았지만,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어머니의 마음고생이야말로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눈물과 고난으로 얼룩진 한 많은 여자의 일생이 아니었겠습니까?
비단 저의 어머니뿐이겠는지요.
우리들 나이쯤 되는 이치고 평온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자란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다들 속내 들어보면 비슷비슷 사람사는 모양새가 거기서 거기지요. 다만, 모든 아버지들의 걸음걸음이 거기서 거기였다해도 못먹어 죽은 귀신이 붙은듯 정에 굶주리고 먹을 것에 목숨거는 자식들 거둬 먹이는데 처절하게 현실과 맞서 싸워주었던 어머니들의 수고의 결실로 아버지의 허물은 그럭저럭 묻어지고 덮어졌다는 표현이 어떨지요.

자식들이 별 무리없이 잘 성장하여 제 밥그릇 챙기고 사람노릇할 정도로 자리 잡고 살고 있으니 울 아버지 복은 많으신 양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한 동네에서 질기게 이집 저집 옮겨가며 살았으니 우리집 형편 모르는 사람 별반없고, 평탄치 못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로서는 선뜻 고향땅에 터잡고 뿌리내리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지금도 동네나가면 어릴적 별명인 오목이로 불리워지고 그때도 할머니였는데 아직도 할머니면서 - 니가 누꼬.. 니가 가가 - 하면서 반가워하는, 이제 나도 같이 늙어가는 친정동네.. 울 어머니 뭐라 그러시는줄 아세요?
남자들이사 죽을 때까지 철이 안드는 동물이니께.. 그럴수도 있다고 다들 덮어주고 별 말들이 없지만, 만약에 내가(어머니) 젊은 날을 시시덕거리며 형편없는 모양새로 살았더면 너희들에게 이렇게 다시 모여 살게된 너희에게 큰 누가 될 뻔 하지 않았냐고.. 상당히 의미있는 말입니다.


딸과 사위 체면 세워주느라고 교회에 나오시기 시작한 것이 이제 겨우 두 해째. 칠순을 코 앞에 두고 평생을 예수쟁이(?) 엄마와 맞대결하시느라 교회와는 일부러 담 쌓으시고 사셨던 아버지.. 교회 다니는게 꼭 마누라에게 지는 일이기라도 하듯이. 늙그막에는 교회다니는 엄마를 휘어잡을 유일한 끈으로 사용하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이제 어쩔 수 없이 주일날이면 낮예배에 나오셔서 한시간을 억지로라도 앉아계셔 주시는데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요. 교회에서 준비한 점심을 드시라 해도 아침을 늦게 먹었다 하시며 손자 손녀에게 용돈 한 푼 쥐어주시는 행복을 잠시 누리시곤 밍기적거리시다 슬그머니 교회무리에서 빠져나가십니다. 제 생각에 아마도 교회문만 나가시면 어깨 쫙 펴시면서 두 팔을 좌우로 쭈욱쭈욱 벌리시며 오늘은 자식을 위해 내가 할 일 했다하시며 뿌듯하게 휘적휘적
산에라도 가셨을 것입니다. 이제 등산은 아니고 산 아래 단골 대폿집에서 세월을 낚으시거나 말거나.

조금전에 느꼈던 감색양복의 정갈한 이미지와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난 뒤, 가시는 뒷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색의 질감이
사뭇 다르게 전해져 왔습니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 아마 서울 아들네에서도 이런 비슷한 단절감을 당신 스스로 느끼시고 우울해하셨을 것 같은 예감에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 가라앉습니다.
오늘 저녁에 찾아뵈야겠습니다.
마음을 열어 보여드려야겠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말고 사랑이 사랑으로 살아나게..
아버지..그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러요...

20020923

 

사랑에도 워밍 업은 필요하다
죽음앞에서는 누구나 착해지고 절대신을 찾는다 하지 않던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드신 이후 첫 면회시간. 주무시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으로 조용히 꿇어앉아 아버지의 야윈 손을 감싸쥐고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헛소리하듯 웅웅 뭔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깜짝 놀라 눈뜨고 보았더니..
♪♬ 내 일생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분명히 그 대목의 그 곡조이다. 아니 세상에.. 지금껏 예배에 나와 앉아 있어도찬송도 제대로 안하시던 양반이..

옛날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미군의 총부리앞에서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그 한 소절만 흉내내어 불러도 빨갱이 아니라고 살려주었다는 그 위대한 찬송을, 1912년 대서양해에서 침몰하던 타이타닉호에서마지막까지 연주되던 그 눈물의 찬송을 당신의 입을 통해 들을 줄이야...

부모자식간에 철천지 원수질 일이야 무에 있겠나마는 그래도 당신의 오랜 방황으로 인해 함께음침한 골짜기를 걸었던 우리 4남매와 고생으로 주름진 엄마의 한을 조건없이 통곡하며 사랑하도록 만든 이 질병의 고통이 늙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누구나 겪는생로병사의 수순이 아니라 가족은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단순한 공식을 깨닫게 되는 사랑의 통로이었음을 이제사 모두들 알게 되었다.

감정의 골을 메꾸는 일에도
원망의 강을 건너는 일에도
그 사랑을 간직하는 일에도 워밍업이 필요하다.
자식이 이렇게 좋은 건줄 몰랐다.. 아내가 이렇게 귀한 건줄 몰랐다..며. 베갯머리 적시는 유약한 아버지.
자식이 자식으로 존재하는 그것만으로도 부모에겐 의미이듯이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만으로 충분한 것을...
이젠 연민이 아닌 깊은 사랑으로 만나지는 남은 날들이기를 소원한다.

200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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