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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푸드 뱅크 - 함께 살아요

by Happy Plus-ing 200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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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뱅크- 함께 살아요

 

 

 

여름의 끝이 너무 심술궂어서 반쯤 넋이 나갔습니다.

수해지역도 그렇고 저 또한 이번 여름이 그리 평탄치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을바람이 선들하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습니다. 며칠째 배가 살살 아프고 소화제를 먹어도 영~~ 더부룩하고 꼭 임신한 것 마냥 ^^* 원인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먹기에 달렸노라 그리 다스리면서..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즉 Food Bank에 대해서 들은 적 있으시지요?
위의 싸이트에 들어가서 홈페이지 첫 화면에 올라 있던 글을 아래와 같이 베껴왔습니다.


[식품의 생산,유통,판매,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잉여 먹거리들을 사회공동체 차원에서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하는 식품지원체계입니다. 우리보다 잘사는 미국 등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민간 비영리기관에 의한 푸드뱅크 운영이 매우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는 설립 초기부터  푸드뱅크를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왔습니다. 그 동안 지역 현장에서는 대한성공회 지역푸드뱅크를 비롯하여 전국 20여 곳에서 푸드뱅크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2000년 2월에는 필립모리스코리아로부터 냉동탑차 6대를 지원받아 지역 푸드뱅크 기관들이 잉여 음식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와 아주 절친한 청소년쉼터인 공동체가 있어 가끔씩 왕래하며 지냅니다.

그럴 때마다 가서 느끼는 것은 주방에 음식,, 부식거리가 철철 넘쳐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여름이면 파리 모기떼도 엄청 많습니다. 지금은 다른 동네로 땅을 장기간 임대해 대충 조립해 옮겨앉아서 시설이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어쨋든 불우 청소년들과 재소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선도하는 좋은 일을 하는 곳입니다.
공동체생활은 말 그대로 먹는 일이 제일 큰 문제이고 우선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밥 먹자.. 그러면 안 먹어..가 대답으로 돌아오는게 다반사입니다만, 공동체의 아이들은 아직도 먹성이 좋습니다. 어쩌면 정에 굶주려 더욱 배를 채우려 하는지도 모르지요.
주방에서 수고하시는 님들 보면 정말 대단하셔요. 죽었다 깨나도 내가 그리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가끔씩 위생적으로 문제가 좀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뭔가 개선이 되어야 되는데 하면서도 마음뿐이지 참견을 못하는 부분 있습니다.
겨울은 덜한데 여름은 썩어가는 부식들 때문에 코를 들 수가 없어요. 말하자면 푸드뱅크를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부식물들 때문입니다. 아마도 보내주실 때는 멀쩡했을지 모르는데, 배당받는 현장에 도착할 때 쯤이면 이미 부추나 상치 버섯 종류들이 푹푹 찌는 더위에 견디지를 못하고 만지면 물컹거리기 일쑤지요.
원래 생물을 취급하는 상인들은 매일 새벽마다 신선한 야채를 도매로 떼든지 직접 산지에서 밭떼기로 공수하든지.. 애지중지 귀한 물건일테고 푹푹 썩어 버리느니 저녁무렵이면 눈물을 머금고 밑지고 헐값에 팔든지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밤 10시이후에 부인들이 대형마트로 우루루 몰려가 북적거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신선도가 조~~금 떨어지는 야채나 과일등이 보내져 오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부근에서 상업하시는 시누이네도 적극 동참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계란이 저희집으로 자그만치 10판이 배달이 되어 왔습니다.

10판이면 한 판에 30알씩 들어있으니 300알이 생겼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많습니다만 계란이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생겼으니 그저 좋았다고야 말 못하겠어요.
이웃과 나눠 먹으면 되지요? 맞아요.

그런데 옆집 친구에게도 한 알 못 건네줬습니다.

한판에 대충 10알 정도는 파손이 되어 있었는데다가 파손된 구멍 사이로 거뭇거뭇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껍질도 아주 얇고 알맹이 크기도 들쭉날쭉해서 정말 시원찮은 물건이 맞는걸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계란을 나눠준 공동체에 전화를 해서 사무원 아가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계란이 *** 이렇던데.. 먹어도 될까....요???
그런데 이 아가씨 단칼에 무 자르듯
- 우린 다 먹는데요-- - 아니 곰팡이가 많이 피고 깨진게 너무 많던데~~요??
- 그럼 후라이팬에 툭 깨트렸을 때 노른자가 흐르지 않으면 먹어도 돼요 -
- 알았어요. - 뚜뚜뚜뚜...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들이라도 그렇지요.
아가씨의 태도에 대해 뭐라 하고싶은 것이 아닙니다. 아마 거기 근무하면서 가장 많은 일이 사람상대하는 일이며 가장 어려운 일일터이고 아마 우리들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꽤나 힘들고 짜증스러운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사실 몇 년전만 해도 시설의 아동들이 밤중에 주방에 몰래 숨어들어가 냉장고의 음식들을 훔쳐(?) 먹는 바람에 주방문을 잠그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뭐 그 정도는 아니라합니다.
하기사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아이들은 아무리 잘 걷어 먹이고 원장 목사님이 복음으로 훈육을 시켜도 월장하여 사고치는 놈은 사고치고 밥 훔쳐먹을 놈은 훔쳐먹고... 그러니 아이들이지요.
어찌되었든 드디어 계란 먹어치우기와의 한 판 승부에 돌입했습니다.


한 번에 30개를 깨뜨려 계란찜을 한 버지기 풀어 만들어 시식해 본 후 별 탈이 없길래 은영이네 가져다 주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내 마음이 미심쩍고 찝찝한데 삼복더위에 누구랑 나눠 먹겠습니까. 냉장고를 여닫을 때마다 한숨이 푹푹 나왔습니다. 계란후라이, 계란말이, 계란덧밥, 계란누들, 계란탕....아무리 먹어치워도 줄지를 않고 아이들도 못 먹이고 혼자만 꾸역꾸역 먹었더랬습니다.
아파도 집에서 할일없는 내가 아프고 말지.. 나중에는 코에서 계란비린내가 술술 났습니다. ^^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비닐 봉투에 넣을 수도 없었고, 싱크대에 깨트려서 버릴 수도 없었고..아.. 이제 생각하니 삶아서 버리는 방법이 있었군요. 여름음식은 조금이라도 찝찝하다 싶으면 그냥 버려야 한다고 누누히 다짐했으면서도 어려운 곳에서 나눠먹자고 보내온 거라 정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그런지 시름시름 이유없이 여름내내 아팠습니다.
속이 이상하고 먹고 싶은 의욕도 전혀 없고..트림을 하면 비린내가 나고..그래도 이 미련곰탱이는 원래 병원 안가기로 유~~명하니까.. 속으로만 부글부글 헛배불러 뒹굴어도 안가고 버티었지요. ^^

결국은 친정엄마의 손에 붙들려 등 쓸어내리고 두들기고 밟고 바늘로 찌르는 소동을 치르고, 한방소화제 한봉 먹고 요즘 찬바람이 불자 조금씩 회복이 되는듯 합니다. 한동안 계란은 못 먹을 것 같습니다.

강릉지역에 수재민돕기 물품들이 속속 도착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뉴스를 보니까 지역 주민들이 혀를 차며 수해복구작업을 하는데 떨어진 속옷이며 구식양복이며 뒷굽 삐딱하게 닳은 구두를 집어들면서 이게 왠일이래요 안합디까...

우리들의 이웃돕기의 생각의 수준을 좀 달리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이젠 어디에 무얼 보내야 할 때에 꼭 내 자식이 쓸 물건처럼, 남편을 먹일 음식처럼, 쓸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것을 보내줄 수 있도록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보내고 도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200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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