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얼굴의 여자
정초부터 손님을 치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어른 둘에 꼬맹이 얼라가 셋이어서 방, 마루, 마당... 거기다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는 을순이(개)까지 북적대는게 신이나서 한 몫 거드니 아무리 좋은 관계여도 사흘이 지나면서부터는 마구마구 짜증이 샘솟듯 했습니다. ^^
손님이 계시니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청소도 하고 싶고 ㅋㅋ손님이 계시니 잠자리도 불편하고 손님이 계시니 공부할 마음이 없던 아이도 공연히 공부핑게대며 짜증내고 밟고 다니는 카페트도 눈에 거슬리고 밥 먹고 치울때마다 수북이 쌓이는 설거지거리도 만만찮고...
사흘이 되니.. 이제 안가나.. 싶은게.. 이게 영.. 사람꼴 우스워지는게 시간문제입디다. 더러운 인간성이 드디어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그 사악한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이었지요뭐. ㅎㅎ
손님이 가실 기미가 보이자 그때부터 갑자기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또 다시 마음이 넉넉해지면서 가실 때 먹을거리도 준비해서 넣어주고 가면서 졸지 말라고 찬양테이프도 챙겨드리고
가서 유용하게 쓰시라고 내가 몇 번이나 읽은 책도 드리고...어느순간에 갑자기 착한 여자로 되돌아와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네요. 배웅을 하면서 꼭 다시 오시라고 금새 또 오시라고..보고 싶을거라고.. 입에 침도 안바르고 손들어 빠이빠이하면서 아쉬운듯 그렇게 멀어지는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어주었습니다.
아..... 이 야릇한 흥분!
다시 찾은 나의 하루, 나의 공간....아이고 이게 행복이구나.
다른 사람과 내 것을 공유한다는게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건지..
남과 내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일이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내가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것들이 얼마나 되는지..
평소에, 늘 한결같이 누리고 살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하고.. 그러고보니 그분들은 나를 귀찮게 하러온 손님이 아니고 내게 행복 맛뵈기로 보내온 행복메신저였나 봅니다.
청소를 했답니다. 손님이 가시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청소를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여자처럼 평소엔 잘 하지 않던 서랍정리까지..날씨가 조금 풀렸길래 아예 내친김에 커텐까지 풀어내려 세탁하고 조금 큰 어항도 자갈이랑 모래를 전부 들어내고 장갑도 끼지 않은채 박박 문질러 청소해주었습니다. 모처럼의 목욕에 금붕어들이 더 빨갛게 수줍어하네요.
물이 조금 찼었는지.. 아니면 개운해서인지..가라앉아서 눈만 꿈뻑꿈뻑.. 입만 뻐끔거리고 있는 한가한 오후입니다.
내 마음에 낀 땟국물도 이렇게 문질러 닦아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사랑하시는 님이 나를 바라보시면서 니 마음부터 닦아라 ~~ 그러실 것 같은 오후입니다.
음악이 그립군요. 흥흥흥
클래식이 좋을까요? 찬양곡이요?
모르겠어요. 일단 늘어지게 한숨 자보고 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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