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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홧병

by Happy Plus-ing 2003.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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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병

 

사실은 그저께 주일이 남편 생일이었습니다.
평일이었으면 우리끼리 살짝 지나갔을 터인데
다들 모이는 주일이라 이왕에 점심을 한 턱 쏘기로 했습니다.

그 전날.. 이웃교회 행사때문에 늦게까지 함께 어울리느라 정작 내가 해놓아야 할 일은 마무리 되지를 않아서 많이 바빴습니다.
성도들이 먹을 점심꺼리로 떡, 과일등은 쉽게 주문으로 끝이 났고 주 메뉴를 콩국수로 정했기 때문에 낮에 삶아놓은 콩을 믹서에 갈고 또 차게 해야 하니까 통마다 부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래도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요즘 내 사는 형편
대가족이다 보니 대충 떼우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거의 날 밤을 새고 새벽예배 다녀와서 새벽잠 없으신 어머니랑 아주버님 밥을 먼저 챙겨드리고
주일학교 마치고 성가대연습까지 한 후에 예배에 앉았으니 설교시간에 꾸버꾸벅 졸다가 완전 뒤로 넘어갈 뻔했다 아입니까. 그 귀한 말씀이 내 귀엔 자장가로 들릴 수밖에요..

내 사는 형편이...
그렇습니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에 띄워진 조각배처럼 불안한 나날들의 연속이고
삶의 리듬이 완전히 깨어져서
내 뜻과는 상관없이 마구마구 흘러갑니다.
고요했던 나만의 아침시간이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이고 들락날락이고..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타인에 의해 하찮게 보여지고
살림하는 여자가 정신을 어디두고~ 라든가, 이런 소리를 들으면 자존심까지 바닥에 나뒹구는 그러한 날들입니다.
이런 날들이 아마도 한동안 주욱 계속될거라는 예감에 벌써 스트레스로 밤잠을 못 이루지만 내색조차 못합니다.
속에 홧병이 도질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끄적여야 분이 좀 가라앉는거 같네요.

그래서 어줍잖은 나의 글의 주제는 언제나
[기다리는 내일]입니다.
그래도 내일은...이라는 그 바램마저 없다면
나는 오늘 도저히 살아낼 자신이 없습니다.

No! 해야 할 때 못 한것이..
살다보니
이만큼 세월이 지나고보니 분명 내게도 잘못이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No! 해야 할 때에 못했던 것이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것이 최선이다라고 생각하고 자위했던 것들이 지나고보니 반드시 그게 정답이었던 것만은 아니었고 분명히 거절했어야 했고 거절할 기회가 있었다는 걸 이제사 압니다.
그런데 요즘 또다시 그런 힘겨운 문제앞에 다달아 있습니다. 상황은 어쩔 수가 없는 형편인데 받아들이기엔 좀 버겁습니다.
IMF의 영향도 있고 아주버님의 부주의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해에 부도로 집 안이 거덜났었고 큰 조카를 하나 맡으면서 시작된 일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두 내외가 열심히 산다고 살아도 아이도 넷이나 되고 그 중에 대학에 둘 씩이나 다니니, 갈수록 사는게 힘에 부치고 난감해합니다.

지금까지야 어머니와 조카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먹고 자고 다니면서 함께 사는 예행연습을 했었어도 그럭저럭 마음의 공간은 있었는데
함께 들어와 살면 안되겠냐고 하는데는
정말 아~~득한 생각에 별별 걱정이 다 앞서니..
역시 며느리는 며느리여서일까요.
처음부터 모시고 살고 한데 모여 살았으면 별 무리가 없겠는데
이제부터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라도 서로 공유해야 되니까 마음비우기에 돌입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은 내 입에서 YES! 라는 답을 속시원히 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로부터 모두가 내 눈치를 살피는 듯 해서 여간 괴롭지가 않습니다.
내 입에서 YES가 안떨어져도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든 일이 진행되리라는 걸 살아오면서 나도 알고 당신들도 아는 바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이 새벽운동을 가기 전에 잠깐
우리 고생하며 살았던 옛날 얘기들을 하면서 눈시울이 벌개지길래 내 속으로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싶은 반가운 마음에..
나의 속마음을 약간 드러내보였더니만.. ^^

- 그래도 그렇지.
당신은 며느리인데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얼마나 속상하시겠냐고..
역시 팔은 안으로 굽고 아무리 그래도 며느리는 며느리이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일 수밖에 없는 벽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는 상황... 그 상황을 내가 만들었다면 받아들이기 훨씬 쉬울테지만.. 그래도 내가 반대입장이라면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힘들었을까.
그나마 내가 베풀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이것도 복이지..
마음 다져 먹을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홧병~~~~
우리나라 주부들 중에 홧병없이 신간이 두루 편한사람 몇이나 있을까요? 명치 끝이 항상 뭔가 딱딱하게 만져지는거 같고, 먹어도 소화안돼 억지 트림으로 공기를 빼내면서 신세한탄 하지요.
그래도 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ㅡ기가 막힌 이 구절은 누가 만드셨나요?
또 지나가겠지요? 흔히 하는 말로 언젠가 웃으면서 옛날얘기 할 날이 온다고요~~~~.
200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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