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봉숭아 물들이기

by Happy Plus-ing 2003. 8. 19.
728x90

봉숭아 물들이기

 

이상하다. 아직 한번도 봉숭아물을 들여본 적이 없었다는 게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만졌었는데
매년 딸아이 손톱 예쁘게 해주겠다고 하룻밤씩 설쳤었는데
그리하여 내 기억속에서 봉숭아는 늦여름 이별편지였는데 그리하여 내 마음속에서 봉숭아는 그리운 추억편지였는데~~~
거 참 이상하다.

올해는 아예 봉숭아씨를 구해다가 마당 한켠에 심었어요.  거름이 좋았던지 봉숭아가 내 키만큼 훌쩍 자라 주홍에 분홍에 예쁘게 피었는데 왠일인지 아무도 거들떠보지를 않네요. 꽃이 지기전에 따서 냉장고에 넣어두었어요.
하루 날 잡아서 학생들이랑 함께 물들이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런데 차일피일 미뤄지네요. 이러다 딸아이마저 못들여줄 것 같아서 꽃잎과 이파리에다 명반을 넣고 식초 한방울을 떨어뜨려 콩콩 찧어 아이 손톱에 올려놓고 이파리로 한바퀴 두르고 비닐로 싸고 실로 묶고.. 다시 위생장갑을 끼우고..흘러 내릴까봐 꼭꼭 여며주었어요. 아마 손가락이 얼얼하고 더워 곧 마취상태로 돌입할거에요.
이렇게하고 밤에 잘려면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만으로도 더워져요.

그래도 하룻 밤 정도야 굳건히 참을 줄 알아야 예쁜 손톱으로 겨울까지 가지요.
울 딸래미 반주할 때 하얀색 피아노 건반위에 주홍빛 왕관을 쓴 손가락들이 날씬날씬 춤추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황홀한데 어떻게 포기해요.
손가락에 묶은 거 풀 때까지 심부름은 당연히 엄마가 해야된대요. 우유가 먹고 싶대요. 평소엔 잘 마시지도 않으면서
뭔 유세래여.. 같이 주무르다 보니 내 손끝에도 온통 붉은 물이 들었어요. 곧 지워지겠지만요.
아..
이제 알았어요. 왜 내 손톱엔 물 들이지 않았는지..그러고도 들였다 착각했는지 아마도 내 눈에 내 마음에 선명한 색깔로 찍혔기 때문이었나봐요. 아마도 그랬을거에요.
가게에 우유사러 갔더니 아줌마가 내 손이 왜 그러냐며 깜짝 놀라더군요.
그래서 의기양양하여 딸래미손톱에 봉숭아물 들여주었노라고 그랬더니 이 아줌마 피식 웃어요.

자기도 딸이 셋이나 있음서.

- 왜??
- 아 요즘 누가 그렇게 봉숭아물 들인대요?
- 그러면요?
- 화장품가게에 가면 봉숭아가루 파는데 물로 반죽해 손톱에 올렸다가 마르면 떼고 다음에 또 덧입히고 몇 번만 하면 되는데..

세~~~~~~~상에나..@.@ 입이 벌어져 말이 안나오네요.
이러다 나중엔 뭐가 안 나올까..아무리..봉숭아가루로 물들이는 거랑 같을라고요.
아무리.. 딸래미하고 얼굴 맞대고 손가락 조물락거리는 거랑 같을까..
뭘 모르긴 아줌마가 정말 모르는거야욤..


20030819

 

 

다이소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