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2003년 태풍 '매미(MAEMI)'가 지나간 자리

by Happy Plus-ing 2003. 9. 16.
728x90

2003년 태풍 '매미(MAEMI)'가 지나간 자리

 

 



즐거운 명절 끝에 맞물려 불어닥친 태풍 '매미(MAEMI)'는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마음들에 찬물을 끼얹었고 서둘러 귀향하던 잰걸음의 뒷모습들은 쫓기듯 불안하고 우울해 보였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편히 안부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미안할 따름입니다.
잘 도착했느냐 아무일 없느냐 괜찮으냐 묻는 안타까운 마음들은 비의 풍속보다 더 빨리 눈물 어린 사랑을 타고 가슴을 적시고 다시금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고 의지가 되어 회복되는 기적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린 인간들의 만용을 깔아뭉개기라도 할 듯 포효하는 소리는 해마다 그 강도가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 않고요. 작년에 겪었던 상처 채 아물기도 전이고 아직 복구도 덜 된 곳에 다시 덮친 곳 적지 않으니 넋이 나갔다는 말, 빈소리 아닙니다.
겪지 않고 당해보지 않고 매체를 통해 듣고 보고 공감한다는게 얼마나 공허하고 입에 발린 소리였을제 잘난 척 주억거린 내 말들에 상처 받은 이 얼마나 많았을지 무엇이든 쉽게 얘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태풍이 제주도를 치고 머리를 돌려 육지로 북상할 때쯤 정전에다가 수돗물조차 쓸 수 없어 난감해 하던 제주도 어느 주부! 주방에 쌓인 설거지거리 하며 화장실 변기 안의 오물도 내릴 수 없는 딱한 모습과 함께 아이 하나가 거실 중앙 탁자 위에 켜 둔 촛불 아래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옛날 사람들은 해지기 전 이른 저녁 해먹고 긴긴밤 캄캄한 밤 참말로 할 일 없었겠다.. 그래서 가난해도 애는 많이 낳은 이유를 알겠다.. 그걸 농담이라고 멋모르고 했던 말 취소합니다. 그런 캄캄함을 촛불로 밝히고 기도로 지켜주었던 어머니들 앞에 죄송합니다.

하늘이 깨지는가 땅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찾아온 암흑천지의 적막강산.. 보이고 들리는 것이라곤 머리칼 휘날리며 온 몸을 분사하는 비의 몸부림 이미 의지는 죽고 본능만 남아 질주하는 바람의 반란!
그저 촛불 한 자루 의지해 탈없이 지나기만을 손 모으고 기다렸던 대책없이 무기력했던 밤. 그 소년처럼 손에 책이라도 들고 있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던 일시정지되어버린 시간!
재개발된다는 소문에 제대로 덮어주지 않고 대충살던 동네의 지붕들이 내려앉고 날아갔다는 크고 작은 비보가 교회 아이들의 가정으로부터 날아들었고 지난봄에 본당 지붕을 전면 교체하고 덮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향방 없이 때리는 빗줄기로 인해 예배당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것쯤이야 퍼내면돼지 말리면 돼지 요렇게 작은 피해에도 어쩔 줄 몰라 오두방정을 떨었던 것이 13시간 만에 침수로 인한 누전을 복구시키고 일시 단절에서 깨어난 다음 반갑게 켠 TV에서 마주친 태풍과 수마가 할퀸 흔적들 앞에선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고 할 말이 있어도 뱉을 수 없는 전쟁보다 더 참담한 현실 앞에 간밤의 불편했던 마음 얼어붙어버렸습니다.
새벽.. 말짱하게 개인 하늘 청명한 바람 냄새. 온 밤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 지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만 아니었다면 흉몽을 꾸고난 듯 거짓말 같았던 밤.


하룻밤 혼절했다 깨어난 전기가 바쁘게 구석구석 다니며 일하기 시작하자 그제사 고요하던 정물들이 주파수 맞추며 제자리 찾기에 돌입합니다. 맥없이 주둥이만 내밀고 뻐끔거리던 금붕어도 다시 자맥질을 시작하고 밍밍한 맹물이던 정수기도 물 질질 흐르던 냉장고도 소음 내며 돌아가고 미안하게도 나는 별일 없이 표시도 없이 그냥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전기란 놈 잠깐 없는데도 하룻밤도 편치못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며 감사치 못하고 무심히 넘겼던 차근차근한 것들이 다시금 감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살아서 귀하게 돌아왔습니다.

홍수 끝엔 먹을 물이 없다지요?

망연자실하여 뒤엉켜진 이웃들의 삶의 현장에도 아마 한 모금의 물이 아쉬울 것입니다.

희망이라곤 한웅큼도 없을 것 같은 오늘.
그러나 뒤돌아보면 언제나 다시 오뚝이같이 일어서서 웃고 있는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내일이 되어 오늘을 보면 다시 장하다 웃을 그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믿습니다.


2003/09/15

728x90

'오늘도 감사한 하루 > 오늘보다 나은 내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근상이 뭐예요?  (1) 2003.11.20
빼빼로데이  (1) 2003.11.12
우리나라의 3대 명절  (0) 2003.09.09
봉숭아 물들이기  (1) 2003.08.19
인생이란 연극무대  (0) 2003.07.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