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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한 하루/책속의 한줄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 중

by Happy Plus-ing 2020.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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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

 

 

 

 

"내가 6.25때 안동농고 1학년이었니더. 그때 인민군이 바로 코앞에까지 쳐들어왔는데 어디 군인이 있어야지. 그래서 안동 시내 중학교 3학년 이상은 모두 학도병으로 징집이 됐었지. 안동중학교 3학년 학생들하고 같이 안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선에 투입됐니더. 그러고는 총 쏘는 것만 대충 배워서 전쟁에 나간게 낙동강 다부동 전투였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같이 갔던 사람 중 반은 거기서 죽었을깁니더. 나는 거서 어째어째 살아서 그 다음에 안강 기계 전투에 투입됐는데, 거기도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는 않았심더. 나는 거기서 15일 동안 단 1초도 총알이나 폭탄소리가 멈추는 것을 못 봤니더."

 

"전쟁에서 제일 무서운게 뭔지 아니껴? 총알은 안보이고 폭탄은 어차피 운이라 눈이 뒤집히면 하나도 안 무섭니더. 제일 무서운게 착검하고 육박전하는 기라요. 서로 눈 벌겋게 하고 눈 마주보고 칼로 찌르고 막 기리대는데, 그때는 내가 못 기리면 상대가 나를 기리뿌마 나는 죽는기라예. 무조건 죽기 살기로 총검을 막 휘두르는 깁니더. 육박전이 끝나면 바지에 오줌이 줄줄 흐르니더"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곤 오른팔을 걷어 커다란 상처를 보여주셨다. 인민군의 총검에 베인 긴 상흔이었다.

 

"그라고 좀 있다가 전세가 나아져서, 우리가 안강에서 영천 넘어 안동 쪽으로 밀고 올라왔는데, 그때는 우리도 탱크가 있어서 탱크를 한 대 앞세우고 우리 대대가 안동 부근까지 올라오는데 진짜 감개가 무량했심더. 드디어 고향 아입니꺼.

그때 매복을 피하느라 보병들은 산비탈로 행군을 했는데 비는 오늘처럼 주룩주룩 오지예. 발을 디디면 전부 시체라.. 시체에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아차 잘못하면 군화가 썩은 시체 뱃속으로 쑥 빠지기도 했었니더. 그때는 온 산과 들이 죽어 넘친 시체였고 벌건 핏물이었니더"

 

"그래서 겨우 안동 밑에 길안까지 왔는데 거기서 인민군에 포위가 됐었니더. 이제는 꼼짝없이 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니더. 앞세운 탱크는 이미 벌집이 됐고 인민군 기관총은 비 오듯이 날아오는데 거기서 우리 대대 중에 살아 남은 사람은 열 명도 안 됐었니더. 나도 그때 엉덩이에 총을 맞아서 엉덩이가 반쯤 날아갔었니더"

 

하시면서 이번엔 바지를 내리시는데, 우측 둔부의 근육이 반쯤 없고 푹 파인 흔적만 남아 있었다.

 

 ' 영화...태극기 휘날리며 그거 봤니껴? 그건 암것도 아니라예.'

"다행히 지원부대가 와서 그 길로 후송돼서 수술하고 며칠 지내니까 궁뎅이에서 구데기가 더글더글했었니더. 그때 뭔 약이나 있었니껴? 그래도 몇 달만에 상처가 아물자마자 다시 고성 피의 능선 전투에 또 투입됐었니더. 그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영화 우리도 단체로 봤는데, 그건 실제의 반의 반도 안되니더. 고성에서는 시체를 쌓아서 방벽을 만들어 시체를 포개놓고 거기다 총을 얹어놓고 싸웠니더."

 

그리고는 뒷주머니에서 보훈증을 꺼내 보여주신다. -7급 -

 

"나라에서는 내보고 7급 줬니더. 궁뎅이는 반이 날아가고 얼굴은 몽땅 파편 맞아 흉칙하게 이리 됐는데 오늘 이때까지 나라에서 아무도 내 보고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안했니더. 몸이 그꼴인데 취직을 할 수가 있나.. 이 나이까지 노가다 해서 먹고 사니더. 내가 그동안 보상 한번 제대로 받았나, 하다못해 좋은 소릴 한번 들었나. 내가 무슨 죽을 죄를 졌니껴? 내가 무슨 큰 죄인이니껴?"

 

할아버지는 오른팔로 눈물을 쓱 훔치고는 다시 허리를 굽혀 일주일 치 약 처방전을 가지고 나가셨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 중 206p

출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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