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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한 하루/책속의 한줄

박동규 '어머니의 그 책'

by Happy Plus-ing 202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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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어머니의 그 책'

 

그 책입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은 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 성경이다. 이 두툼한 성경을 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 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 그 책이다.
기쁘고 외로우실 때마다 혼자 읽으시던 그 책이다.
이 두툼한 성경을 두 손으로 모아잡고 아들을 위하여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께 간구하시던 그 책이다.
붉은 연필로 언더라인을 그으시며 80편생을 의지해 사시던 그 책이다.
지금 내가 읽는 성구마다 어머니의 눈길이 스쳐가시고 어머니의 신앙이 증명해 주시고
어머니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어머니의 성경.
어머니의 기도로써 내가 받은 축복
어머니의 기도로써 내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총
지금 나도 돋보기 너머로 어머니의 성경을 읽으면서
자식들을 위하여 주님께 축복을 간구한다.
만일 내가 이 성경을 자식들을 위하여 유물로 남기면 우리 집안의 기도는 3대로 이어질 것이다.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주여, 구원하여 주옵소서.
주여, 축복하여 주옵소서.

[어머니의 성경] 의 전문

 

 

시편22 : 4절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어머니의 손 때가 아직 묻어 있으며 그 보시던 눈길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으며 몇자 검정 연필로 줄이 그어져 있어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눈이 어두워 손자가 사 준 새책을 보려고 그해 봄에 백내장 수술을 하고 그 큰 책을 아마 다 보시지 못하고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 놓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작은 책을 가지고 있어 눈이 어두워 큰 책으로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어느새 훌쩍 커버린 손자 녀석이 어느날 월급 탔다고 기뻐하며 할머니에게 사준 책입니다. 그 책을 잠시 보다가 늦은 여름날 병원으로 가셔서 가난한 목사님의 맏딸로 태어나 모진 세월을 사시고 단풍이 곱게 물든 청명한 가을날에 힘겨운 생을 그렇게 다하셨습니다.

덩그러니 내 곁에 유품으로 남은 그 책이 지금 막내 아들 곁에서 같이 숨을 쉬고 있답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지혜를 더 해주면서 오늘도 이리저리 책갈피를 넘기고 있습니다. 어느새 수년이 흘러 어머니의 손때는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헌 책이 되어 버린 그 책이 지금 나를 이끌고 있으며 내 곁에 항상 같이 있답니다. 어머니의 의지가 이제는 내 간절한 의지가 되었고 내 앞에 등불 처럼 내 앞 길에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책입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라는 시의 첫 소절입니다. 박목월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 즉 박동규 시인의 어머니에 관한 일화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재워주는 곳도 없고, 먹을거리도 없어 동규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무겁게 지고 왔던 재봉틀을 쌀로 바꿔 오셨다고 합니다. 산길에서 만난 청년이 동규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며 쌀자루를 대신 짊어져줍니다. 동규가 고마워하며 따라가는데 청년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집니다. 야속하게도 청년은 그 말은 들은 체도 안 하고 멀리 가버립니다. 어쩔 줄 모르고 울고 있는데 한참이 지나서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십니다.

쌀은 어디에 있니?” 어머니의 물음에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해지셨습니다. 어머니는 뭐라고 하셨을까요? 박동규 시인이 경험한 일은 자신이 잘못해서 귀하고 중요한 쌀자루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는 경험입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애미를 잃지 않았네! 하며 우셨다고 합니다.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던 나를 끝없이 똑똑하고 영리하다고 칭찬해주시던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이 한마디에 박동규 시인은 귀하디 귀한 쌀자루를 잃어버린 몹쓸 인간이 아니라 영리하고 똑똑해서 애미를 잃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이지요. 쌀을 잃어버린 애통함보다 눈 앞에 소중한 아들을 잃지 않았다는 감사함을 담은 마음이 어머니와 아들을 지탱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박동규 시인의 어머니이신 유익순 여사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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