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돈 벌면 되잖아
며칠 전부터 계속 축구화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 때문에 별별 생각을 다하고 살았습니다.
그냥 할인매장에서 좀 싸게 파는 걸로 사겠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 주겠더만 다른 친구들이 유명브랜드화를 신었으니 본인도 꼭 그걸 사 신어야겠다고 고집하는 통에 그만 버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맨날 붙어다니는 친구놈 하나가 울 아들과 똑같은 신발을 사겠다며 현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언제 사러 갈거냐고 독촉하는 중이었으니 조바심이 더욱 컸을테고 상대적으로 그쪽 집과 우리집이 비교도 되고 섭섭한 마음도 있었을테니 그 심정 모르는 바는 아니나 계속 막무가내로 졸르는데야 윽박지르며 눌러앉힐 수밖에 도리가 없었지요. 그렇게 서먹서먹한 오후를 보내고 늦은 밤 귀가한 즈이 누나가 이 사실을 알고는 동생이 알아듣도록 타이르고 있는 걸 들었습니다.
엄마아빠는 그렇게 비싼 신발을 사 줄 형편이 못 된다라는 철이 든 누나의 충고였지요. 누나가 무슨무슨 소리를 해도 결론은 마찬가지! 다짜고짜 이놈 하는 말이
'엄마도 돈 벌면 되잖아.. 왜 집에서 노는데...' 이런 황당한 말을 듣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얼마나 기가 막힌 말이었는지 내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고막을 때리고 뒷골을 타고 내려가 척추가 흔들립니다. ^^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커녕 배고픈 돼지처럼 상대적 빈곤, 상대적 열등감에 코를 박고 사흘밤낮을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미움'과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내가 미워 못견뎠습니다. 정신의 사치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거 하나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이 밉고, 열악한 환경이 싫고, 멀리 있는 잘 먹고 잘 사는 동생들까지 떠올리며 미워했습니다.
혹 그들에게 죄라도 있는 것처럼.. 내가 없이는 하루 반나절도 혼자 집에 있기 싫어하는 남편도 미웠습니다. 마누라를 위하고 사랑해서가 아니라 단지 마누라가 집에 없으면 귀찮고 성가신 일들이 생길까봐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생각하니 미웠습니다. 왠지 무능해보이고 왜 이렇게 가족들을 힘들게 하나 싶어 밉고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때문에 아집 때문에 미련 때문에, 좋게 말하면 사랑때문에.. 성도들에게서 등을 돌릴 수 없어서...기타등등 여러가지 이유들이야 수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우선 당장은 미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게 아니지요. 그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나 나나 집에서 그냥 노는게 아니고 [있어줌..] 그 자체가 사역입니다.
네 눈에 지금 엄마가 놀고 있는 듯이 보여도 지금 공무수행중이다..라고 설명해도 아이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설사 알아들었다해도 포기하기엔 축구화가 너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손에 쥐어주는 정답 내가 어린아이라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을 가졌다면 '예수님 축구화를 주세요' 라고 단순무식하게 기도했겠지만 그냥 답답한 마음에, 울적한 마음에 남 탓하며 미움만 키우다가 마음은 지옥이 되어버렸습니다.
여종을 불쌍하게 여기신 주님. 머리로 알고 있었던 정답을 기어이 손에 쥐어주고 보여주고 들려주시네요. 자주 밤새워 기도하시는 집사님이 성전으로 올라가기 전에 잠깐 들렀네요. 주님이 보내셨나 봅니다.
3년전에 이혼을 하면서 아이들마저 빼앗겨 가슴절절이 자식을 그리는 안타까움으로 밤잠을 설치는 그 억장무너지는 모정을 내 앞에 데려다 펼쳐놓으시면서 엄마와 생이별하면서 받은 상처로 없던 간질병에 발작까지 한다는 큰 아들 소식으로 자지러지는 불쌍한 영혼을 내 앞에 데려다 놓으시면서 '이런 사람도 산단다...'
'적어도 네 자식 네 손으로 거두며 살고 있지 않느냐...'
'너는 ...감사할꺼리가 얼마나 많으냐..'
'꼭 이렇게 유치한 방법까지 동원해야 되겠느냐..'
묻고 또 물으시는 주님!
내가 내 아들 설득하는 것보다 나를 설득하는게 더 어려우셨을 주님!
눈물콧물 닦으며 내 눈앞에 놓여진 연약한 [정답]을 끌어안습니다.
알겠습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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