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수의를 만드시던 나의 어머니

by Happy Plus-ing 2020. 3. 9.
728x90

수의를 만드시던 나의 어머니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가

삼십 구만 원 짜리 옷을 손수 장만하셨다.

평생 그런 비싼 옷은 처음이셨다.

 

한사코 허름한 가격표를 확인하고서야

겨우 옷 사기를 허락하시던
당신의 요지부동 헌법 1조 1항을

기꺼이 스스로 어기신 것이다.

 

오늘밤에도 요모조모 세상을 뒤척이시다가

아들, 손자 다 잠들기 기다려

장롱 깊숙이서 꺼내 살풋 어루만지실
어머니의 새 옷.

 

낯선 불안과의 면접 때 입으시려는
단벌의 외출 정장일까.

미처 면사포 한번 써보지 못하고

어영부영 헤어진 아버님께 보이실
신식 웨딩 드레스일까,

나는,

생전 한번도 사드리지 못한 거액의
저 눈부신 황금빛을

마침내 아주 이별하는 마당에 이르러

얼음장같은 멍 행여 다치지 않게

곱고 단정하게 입혀드려야 하는 것이다.

 

- 김규성 시인 '수의' -

 





 

수의를 만드시던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시집오시는 그날부터 우리집 가장이셨습니다.

손재주가 많은 이유였는지, 범띠 가시내 생활력 강한 팔자를 타고 나셨는지 언제나 씩씩하고 건강한 정신력으로 우리 4남매를 그렇게 먹이고  입히셨던 나의 어머니.

베개모서리의 형형색색 아기자기한 조각보가 재봉틀 아래로 떡가래처럼, 줄줄이사탕처럼 내려와 쌓이면 나는 그 옆에 앉아 쪽가위로 한개씩 자르고 차곡차곡 챙겨서 한 보따리가 만들어지면 엄마가 납품하는 서문시장 이불집까지 걸어서 심부름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 어머니는 '주금옷'(수의)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셨는데 누런 삼베천을 펼쳐놓고 초크라는 분필같은 것으로 대충 쓱쓱 본을 뜨고 자르고 재봉틀 위로 올라가셔서 주르륵 주르륵 페달을 밟으시면 내려올 줄 모르고 밤이 새도록 하시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은 으례히 동생들 밥챙겨먹이고 씻기고 공부 봐주고 재우고...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지 나중에 여쭤봤더니,

원래 상복은 바느질을 끊지 않고 한자리에서 한 벌을 만들어야 오래 사신다는 그런 말이 있다했던가???

어차피 시장에 내다 놓고 수북히 쌓아놓고 누가 어떤 정성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그런 수의를 내가 입을 옷처럼 그렇게 정갈하게 고운 바느질로 정성을 다하시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한 땀 한 땀 엄마의 솜씨는 서문시장 상가에서 알아주는 고운 바느질이어서 삼베 말고 아주아주 고운 세모시로 고가의 수의를 만들어주는 몇 안되는 바느질쟁이였었다고 합니다. 어떨 때는 시장 상가를 거치지 않고 입소문으로 바로 제작을 해달라고 오는 고객분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정말 한 벌에 4,50년전이었는데도 제 기억에 70만원? 뭐 그 정도로 아주 비쌌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날은 우리 어머니 아마 신나게 페달을 밟으셨을 것 같아요.

 

 

윤년 윤달이 되면 나의 어머니는 끼니를 못챙길 정도로 그렇게 바쁘셨지요. 윤년, 윤달에 만든 수의는 더욱 더 고가에 판매가 되었기 때문인데, 어머니는 윤달만 되면 자의반 타의반 바쁘셨던거지요.  그렇게 어머니는 일흔살이 되도록 그 일을 손에서 놓지를 못하셨어요. 이번만, 이 옷만... 하고 부탁해 오는 주문을 거절을 할 수가 없으셔서요. 

이제는 눈도 어둡고 기력도 딸리는 팔순의 어머니, 정작 당신의 수의는 그냥 평범한 옷이더라고요.

죽으면 태울텐데 뭐하러~~~그러면서 환하게 웃으시네요.

 

저희집에는 여름 베갯닛, 삼베 호청, 삼베 홑이불, 심지어 남편의 모시 와이셔츠 등등 더러 엄마의 손때묻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전에는 별로 귀하게 여겨지지 않았는데 이것도 나이라고 옛것들이 자꾸 좋아져서 따로 모아두고 들여다봅니다.

어쨋든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본인의 나중 마지막 날을 준비하면서 그렇게 정갈한 수의를 마련해놓는다고 했습니다. 머리맡, 장롱 맨 아랫쪽에 본인의 수의를 개켜두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어떤 마음이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