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엄마라는 직업, 외박 한 번 하기 힘들다

by Happy Plus-ing 2002. 5. 16.
728x90

 

 

 

엄마라는 직업, 외박 한 번 하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 10년도 훨씬 더 되었을 성싶어요! 완벽하게 홀로 외출, 아니 외박하는 2박 3일의 기회를 잡은 것이.
막내가 유치원 다니기전만 해도 가끔 어딜 가기가 수월했는데, 부부 싸움하면 뽀르르르(울 남편 표현입니다) 친정 쫓아가서 일러바치기도 쉬웠는데..
언젠가부터 어디를 간다는 일에 엄두를 못내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탓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얼마나 품에 끼고 살았던지... 마마보이 안 된 게 천만다행입니다.
이번 주초에 서울근교 아주 시설 좋은 수양관에서 불쌍한(?) 사모들 모아 먹여주고 재워주고 좋은 강사도 모셨다기에 선착순으로 등록해 놓고 한 달 여를 기다렸으니.. 지난 일주일 동안 집 떠날(?)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좋던지...  늘 하던 반복된 일임에도 그저 즐겁고 콧노래 절로 나와 너무 까불다가, 초칠까 내심 조심하면서도... 이러다가 무늬만 세미나 되려나~~~ 계획도 무성했습니다.

 

서울 가면... 가기만 하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이불이랑 남편, 아이들 옷 모두 손질해놓고 다림질하고 서랍마다 차곡차곡 다시 꺼내 입기 좋도록 정리해두고.. (평소에 살림 솜씨 별로입니다)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먹을거리를 냉장고에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은 늘 손님이 끊이지 않는 편이니까 평소에도 밑반찬은 골고루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별스런 일이 아니지만 공연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늘 김치는 포기김치를 담궈먹는데 내가 없으면 꺼내먹기 귀찮으니 마구 썰어 버무려 담을까? 아니야, 이틀인데 그 정도 수고도 못할까.  물김치는 배추와 무로 백김치처럼 담가 먹는데 그것도 썰기 귀찮으니 열무랑 배추, 총각 무를 살짝 절였다가 건져내고 양파랑 마늘 무 빨강 고추를 갈아서 국물이 진하면서 시원하게 담갔습니다.

 

토요일에는 냉장고 청소하고 구석구석 털고 닦고 정리하고 평소보다 몇 배 더 깔끔을 떨었습니다.
에구.. 남자들 이사 어디 갈라치면 머리 감고 대충 툭툭 털고 자동차 key만 들고 나서면 되지만 이놈의 여자들이란....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시간이 갈수록 집 떠날 날짜가 임박해 올수록 식구들이 모두 뒤숭숭해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내가 좀 얄밉게 굴었나???  쌀을 씻다가도..
[여보, 쌀은 저기 있는데 컵에 깎아서 3공 기하고 콩이랑 잡곡은 여기 있는데 요렇게 섞어서 씻어 좀 불렸다가 압력솥에...]

[3일 먹을 것 해놓고 가면 되잖아!]
(.. 쳇 ^^ 평소에는 먹을 때마다 더운밥 하라면서..)

된장, 고추장을 작은 플라스틱 통에 덜어다 놓고 살구씨 기름과 참기름병을 구별할 수 있도록 찾아보기표를 붙이고 미원통과 설탕통 또한 서로 헷갈리지 않게 또 견출지 붙이고..... 하는 내내 왠지 뒤통수가 따끔거렸습니다.
나도 진즉 느끼고 있었는데 지켜보는 남편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나 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지켜보는 것처럼.. 나 역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아내의 공백이 엄마의 부재가 마음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던가 봅니다.  괜히 아이들에게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 (...) 요게 아마 너희 엄마...라는 말인 듯한데.. 그래도 이 한 마디에 오만가지가 다 함축되어 있습니다.


아시지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이것저것 챙기면서 세상을 마지막 정리하는 엄마의 심정이 어떤 것일까...
그저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앞둔 적잖은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식들을 남겨두고 떠나야만 할 때 무얼 챙겨줘야 할지,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어떻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막막한 그 심정이 어렴풋이 느껴졌다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요?

벼랑으로 내몰려 마지막 방법으로 죽음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아버지들이 자식들이 눈에 밟혀 어찌 그 먼길을 황망히 떠났을 까요? 이 땅에 내 맘대로 오지 않았으니 그 나라에도 언제 내가 불려 갈지 아무도 모르는데 떠남의 순간이 분명히 나에게도 있을 텐데..
* 모두들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기가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 고 책에서 읽었는데,

잠시 잠깐 외출했다가 분명히 돌아올 것을 아는 이런 헤어짐에도 온갖 생각들이 교차하는데..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사랑하는 모든 것들, 애지중지하며 만지던 모든 일상들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렇게밖에 할 수없도록 내밀쳐진 환경은 누구 때문이었을까? 내 탓일까 남 탓일까???  잘 살아야겠습니다.  후회 없도록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