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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한 하루/오늘보다 나은 내일

일 福 많은 여자

by Happy Plus-ing 2003.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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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공원

 

일 福 많은 여자


무쇠팔뚝을 자랑하며 전천후로 휘젓고 다니던 내게도 드디어 여자로서의 위기가 왔다.
몸이 말을 안 듣는 나이가 되었다는 걸 나날이 실감하는 날들. 나이들고 늙어가는 걸 시위라도 하듯 왜 저러고들 살까.. 나는 쉰이 되고 예순이 되어도 여전히 예쁠[?] 자신이 있었던 어제가 분명히 있었는데...아무리 힘들고 고된 하루를 접고 잠자리에 끄응하며 들었어도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거뜬하게 털고 일어나던 날들이 언제였던가 싶게 천근만근 무거운 것이 나 몸살났소.. 하고 꾀병이라도 부려보고 싶은 나른한 봄날. 봄을 타는 것 같다며 마음앓던 일도 사치라
이젠 마음보다 몸이 먼저 봄을 앓는다.

몸을 도구삼아 한 평생을 억측같이 살아오셨던 시.어.머.니..
한량이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친정 엄마..
두 분이 들으면 포시랍고 호강에 받쳐서 하는 소릴랑 말어라고 하실게 분명한..
아니다.
두 어머니의 기질을 고스란히 타고 나고 배우고 익힌 내가 그까짓 육체노동이 겁나 내 몸 아끼려 치사하게 꾀병까지 앓고 싶으랴! 몸보다 먼저 마음이 지친게지. 예전같지 않은 한심한 몸뚱이를 내려다보는 내 자신이 서글픈게지.
딸들이 엄마팔자 닮을까봐 전전긍긍하던 친정엄마는 딸 셋 모두 재봉틀 근처에도 못 오게 하였고 재봉틀 밟는 소리 아침저녁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어도 실을 어디서 어떻게 꿰어 어떻게 페달을 밟는지도 모르게  진짜 관심없이 컸었는데.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걸 왜 몰랐을까.
일福 많이 타고 난 년은 해산하고 사흘도 못누워 있는 더러븐 성질을 타고난 년은 놀고 먹는게 罪로 여겨지는 이땅의 여인네로 태어난 년은.. 몸 아끼지 않고 힘들면 마음이 편하다는 단순무식한 년은..어딜가도 편한 백성은 못 된다는 걸
몸이 지쳐 말을 안 들으니 마음까지 옹졸해지는 것에 무지 화가 난다.
- 따르르릉
- 여보세요
- 뭐하노 잤나?

 

나는 왜 전화해서 다짜고짜 [잤냐?] 고 묻는 사람이 병적으로 싫은지 모르겠다.
그냥 - 아니요 - 하고 말면 될 것을 공연히 신경질이 나는 이유는 뭘까.

바깥 일을 하는 사람들은 왜 집에 있는 나 같은 전업주부들이 대낮엔 할 일없이 빈둥거리든지 낮잠을 자고 있었을거라고 생각할까. 어지간하거들랑 이것 좀 해다오 저것 좀 부탁한다 등등 오만가지일에 땜방용 응급용 5분대기조로 불러도 된다고 생각할까.

어쨋든 시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역시 [잤나?] 하며 안부를 묻고..ㅠ.ㅠ

 

용건은 4월 중순이 시어머니 생신인데 식목일이 공휴일이니까 다들 모이기 좋은 날 모여서 밥 먹는게 어떠냐는 거였다.
식목일을 전후로 교회에 봄맞이 대청소를 하기로 되어 있어서 안팎으로 북적대면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아서 다른날로 하면 안되겠냐 했더니 무슨 상관있냐고 자기들끼리 놀다갈건데...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데 이길 도리가 없다. 시누이 세 명 모두 백금녀만한 덩치에 목소리도 우렁차고 말발도 세다. 자기들은 집에서 남편이나 시어른들을 휘어잡고 이기며 산다고 호탕하게 웃어가면서 자랑하면서 왜 나는 당신들에게 고분고분해야 착하단 소릴듣는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모두 모이는 집안 행사 한 번 치르고 나면 한참동안 스피커 달고 다니는 듯 귓 속이 와랑와랑하다.
김치도 하나 제대로 못 담그는 맏며느리 울 형님이사 그저 퇴근하고 얼굴 삐쭉 내미는 것으로 해결하려 들거 뻔하고 음식에는 일가견이 있는 집 딸네들이니 나가서 먹는 건 절대로 돈 아까워 못 먹고 꼭.. 반드시.. 집에서 먹어야 하는데 일은 안 거들고 먹으면서 계속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입으로 거들테고 스물 댓명이 이틀동안 북적댄다 생각하면 해골이 빠개지는 듯 했다.

 

그렇게 지난 한 주간은 몸이 부서지도록 일만 했었다. 일주일 전 주일 오후에 본당의 커텐들을 몽땅 뜯어내려 놓았고 주중에 전기배선과 조명공사를 이틀에 걸쳐서 했었다. 교육관입구에 북태산같이 쌓여있는 빨래더미를 오며가며 쳐다보면서 금요일까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저건 공동체일이니까.. 함께 모여서 하기로 했으니까..하며 아무리 못 본척 하려고 애를 써도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생업에 바쁜 여성도들이 금요일에 모여 한꺼번에 저걸 빨면서 집에만 있는 사모는 저거 좀 안 빨아놓고 뭐했노..할 것만 같아 공연히 불안하고 개운치가 않았다.
그래서 한나절은 세제에 담궈 불려놓았다가 세탁기를 돌리기를 하루에 두 차례씩, 주말 쯤에는 거의 2/3가량이 내 손을 거쳤다. 그러는 와중에 교회앞 가게를 세를 내어 개업준비를 하는 성도가 도배와 바닥 장판을 깔아야 한다면서 동네에서 아는 안면에 뭐든 싸게 사오라고 나를 앞세우다가 도배지 장판값 그리고 수고비가 만만찮으니까..
까짓거 놀면 뭐하노 내일 하루 알바 하소.. 하는데 난 그게 농담인 줄 알았네. 하루종일 도배일 도와주고 저녁에 모로 쓰러져 잠들었는데 아들래미가 와서 흔들어도 모르고 딸래미가 학원에서 자정이 넘어 집에 오니 마중나갈 시간인 줄도 모르고.

 

지난 일주일이 꿈만 같다. 오늘 밤 거칠어진 내 손 끝이 저리고 파스붙인 허리, 부었는지 살 쪘는지 열감으로 뜨듯하게 부풀어오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복작복작대며 생신도 잘 치렀고 덕분에 냉장고엔 모처럼 먹을게 넘치고 우리 아이들은 용돈 두둑이 챙겼다.
화분 분갈이며 대청소도 깨끗하게 마무리했고 케케묵은 쓰레기도 처분했고 그 많던 커텐도 깨끗이 세탁해서 달았고 환하고 예쁜 조명불빛에 예배도 잘 드렸다.
일 福 많은 년!
봄 한번 거창하게 맞다.
030407 봄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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