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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한 하루/사랑의 고백-신앙

노가다 동지들에게

by Happy Plus-ing 200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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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 얘들아... 저 아이들이 커서 시집장가갔습니다.

 

노가다 동지들에게

 

청년회수련회를 마지막으로 2003년 여름행사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이제 9 월!
귀뚜라미소리 요란한 가을의 초입입니다. 이달 말에 있을 가을행사 찬양축제 준비로 또다시 바빠지겠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로움이 느껴지던 어제,  8월의 마지막 주일.
낮예배 후 점심을 먹고나면 오후예배시간까지 막간을 이용한 커피타임입니다. 교육관에는 어르신들이 계셔서 청년들끼리 본당에 모여 더러는 누워있기도 하고 마음맞는 친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들틈에 있자니 문득,
나를 포함해 우리들 몽땅 몇 년전 함께 집을 지었던 노가다 동지들임이 생각이 났습니다.
불과 한 두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제자리에서 한 몫씩 감당하고 있는 대견한 청년들, 정말 마음껏 축복을 빌고픈 아이들입니다. 잘 자라주어 고맙습니다.

지난 98년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왕창 허물고 새로 지었습니다.
그림같이 예쁘고 아름답게 지어진 건축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는 우리 형편에도 맞고 쓸모있게 사택도 짓고 내친 김에 교육관도 짓고 본당도 수리하고..참 공사라는게 시작해 놓으니 이쪽 고치면 저쪽이 뵈기 싫고.. 이왕 시작한 것 싶으니 에라이 싶고.. 그저그저 끝이 없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어떠할른지 몰라도 그때 그 고생했던 기억을 함께 공유한 우리들은 그저 들어오며 나가며 흐~뭇하고 왠지 기분이 으쓱해지는 것이 직접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 잘 모를 것입니다.  가끔 은행에 볼일 보러가서 뒤적거려보는 주택관련 화보집이나 여성잡지등에 소개되는 예쁜집들을 보면 솔직히 여자로 태어나서 한번 저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사는 날동안에 실현이 될지 꿈이 될지 아직은 그림의 떡인데.. 뭐 어차피 내 집도 아니고 내 소유라 그래봐야 영원히 가질 것도 아니고 나그네인생.. 껍데기에 연연하고픈 생각은 없습니다.

허물기 전에 우리가 살았던,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직한 바로 그런 집.. 어두컴컴하고 나즈막한 부엌에 마당을 가로질러 예배당 담벼락을 휘돌아 한쪽 귀퉁이에 자리한 재래식 화장실..삐그덕 이빨이 안맞는 문들.. 거기다 바퀴벌레 좀벌레 발 여럿 달린 지네 ... 분명히 쥐들도 함께 살았을 게 분명한 옛 집.
처음에는 캄캄한 밤에 부엌이나 마루 심지어 벽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다닐 벌레들 생각 때문에 도무지 편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란스러웠습니다.  이내 익숙해졌지만..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곰팡이였는데 몇 년째 간직해온 액자표구들도 곰팡이들에게 수난을 면치못하고 기관지가 약한 남편에게 여름 장마철 견디기란 극도의 인내심과 자제력을 요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이사온 그 다음해에는 근년에 드물게 엄청난 비가 내렸는데 마루와 방에 수건 걸레들을 있는대로 꺼내 깔아놓고 쓰레받기로 물을 퍼내면서 땜방으로 지붕을 덮어도 임시방편이고..그렇게 버티며 몇 년 살고 난 후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수리하든지 짓든지 해야하지 않겠냐고 교회앞에 案을 내놓았었습니다. 누가 먼저 거론해주길 기다렸다간, 이렇게 고생하는 걸 알아주길 기다렸다간 틀림없이 우리모두 폐병쟁이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지요.

사실은 돈이 문제지, 갑론을박할 일은 아닌데.. 그때 조금 섭섭했던 일은 그럭저럭 형편이 나아 아파트에 살거나 그나마 번듯한 주택에 사는 분들은 비가 질질 새는 낙후된 사택의 어려움에는 별 관심이 없고 돈 들어갈 걱정에 계산만 하는 눈치였고, 오히려 어려운 형편의 성도들은 진심으로 걱정도 해주시고, 이해는 하지만 선뜻 물질로 도웁지를 못하니 안절부절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솔직히 마음이 좀 그랬었습니다. ^^

8월 2일! 날짜도 못 잊겠습니다. 드디어 일복 터지기 시작한 날!
우야무야 대책없이 시간만 흐르니 =박력무대뽀화끈한 경상도싸나이= 울 남편 저지르고보자 사고치고보자!!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단돈 오백만원인가를 들고 오함마(맞는지?)로 일단 벽부터 무너뜨리고 지붕을 내려앉혔습니다.  마침 방학중이던 대학부청년들 그리고 지금 대학생이 된 어린 중고등부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며 남편이 직접 노가다판 짱!(일명 십장)이 되었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일용직은 아마도 보일러공사때만 불렀던 것으로 기억되니 그 나머지 온갖 궂은 일, 힘든 일들을 거의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했었습니다.  그 해 여름은 감동의 한 편 드라마였지요.
아침에 눈만 뜨면 현장으로 달려와서 연장 하나씩 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닥을 고르고 모래를 치고 여름철 그 긴긴 날, 그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크고작은 상처가 끊일 날이 없었던 남자아이들, 분명히 엄청 힘들고 지쳤을 여자아이들,
드러내서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참고 동참해준 그 아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밤 나는 편하게 비를 피하고 바람을 막아내며 따뜻한 잠을 잡니다.  고맙습니다.  그 식구들 하루종일 허기채워주느라 닭이며 돼지며 ... 참 신세 많이도 졌습니다.
그 또한 감사합니다. ㅎㅎ



남의 집 귀한 아들 귀한 손자 힘든 일 시킨다며 안쓰러워 그저 집앞을 왔다갔다 하시던 할머니들, 그래도 그리 극성스럽게는 반대하지 않으시고 걱정스런 마음 가득한 눈길로 좀 요령껏 쉬엄쉬엄했으면 싶으셨을 그 마음 어찌 모르겠습니까.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도 하지만 한 평생 자기 손으로 섬기는 자기교회에 모래짐 지어다 날르면서 건축하는 일에 동참할 기회가 어디 그리 흔한가요. 그것도 젊디젊은 날에.. 그 빛나는 청춘을 바쳐가면서..
아주 오래전 우리들이 어릴 때나 그 이전의 건축하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온 교우들이 달려들어 십시일반 헌금하고 물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헌신하고 벽돌 한장이라도 손수 갖다 날으시고 그런 순수한 열정으로 섬김을 다하였지만 요즘이사 돈이 다 해결하고,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현대식 공법으로 집을 짓지 옛날처럼, 우리들처럼 무식하게 건축하는 사람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집 지을 당시에 뽀얀 얼굴의 중학생이던 모모 군.. 새벽일찍 주차된 차량 윈도브러쉬에 명함꽂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
샷시공장에서 한달 내 막노동을 했던 모모군과 모모군의 땀흘리며 번 돈. 대학교 장학금 중 일부를 드렸던 자매..
큰 공사는 대충 마무리되었어도 도배며 장판이며 전등 하나까지 소소하게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많던지요.
돈 떨어지면 기도하고 전화하고, 기도하고 방문하고.. 창문 하나 달 때에도 천장에 전등 하나 달 때에도 그들의 눈물의 수고와 열정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 아이들의 저축통장과 돼지저금통까지도 동원이 되었었는데요.

인생의 가장 소중했던 시간의 일부를 아낌없이 드렸던 그대들에게 福있으리. 이 모든 수고와 땀흘린 댓가에 대해서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도 누가 보상해 주지 않아도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보시는 분이 계시니, 그분 앞에선 공짜가 없을테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으렵니다. 그저 고맙다는 말은 진작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아직은 군대에 가 있는 형제도 있고 제대하고 이제 막 복학하여 새로 학업에 전념할 형제도 있는데 형님아우로 재미있게 지내는 것을 보면 정말 대견스럽습니다. 머지않은 날에 그대들이 주 안에서 믿음의 짝들을 만나 고만고만한 아이들 낳아가며 그리 멀리 떨어지지 말고 도란도란 함께 의지하고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머지않은 날에 그대들이 이 교회의 충직한 일꾼들이 되어 서로를 섬기면서 친 동기간처럼 의좋게 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때쯤이면 아마도 이빨빠진 호랑이 목사님이 여러분들을 제 자식처럼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그리 꿈꾸고 살아도 되겠습니까?

200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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