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 사랑...그 빛바랜 투쟁
한국의 이혼율이 거의 50%에 이르고 있다는 통계수치는 충격적이다.
그것이 자못 충격적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열정이 과감하게 고양되고 있다는 상황의 아이러니 때문이다. 소설과 드라마, 영화를 포함한 대중적 문화텍스트에서 상투적으로 반복되는 ‘사랑’에 대한 눈부신 열정을 상기해 보라.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현대사회에서의 이혼율 증가는 일정한 필연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도 생각된다. 근대 이전의 결혼이 ‘가정’으로 상징되는 공동체의 논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현대적 결혼은 공동체의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연약한 ‘개인’들의 결합으로 이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확실히 과거의 '결혼’에 비하자면, 현대적 결혼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이 때의 ‘자유’란 우리가 전통이라 일컬어왔던 유기적인 질서가 좋든 싫든 보장해주었던 일련의 '안정감’을 파괴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그 자유는 가족관계에서의 여성적 권리의 확대와 남성의 전횡적 권력의 약화를 수반해 왔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사회=남성, 가정=여성’이라는 불평등한 성적 역할 분담론을 격파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논리적으로는 진보적인 방향으로 결혼이 진화해 왔다고 판단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남녀 양자에게 결혼과 가정에 대한 관점에 일정한 혼란을 초래해 왔다. 많은 남성들은 변화된 가족 내에서의 권력축소에 이성적으로는 동의할지언정 정서적으로는 반발하고 있으며, 여성들은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은 사회적 차별과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가정을 이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현대적 가정은 사회적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피난처로 이상화된 것과는 정반대로, 실상은 또 다른 투쟁의 공간이 되고 있다. 각각의 배우자들에게 사회가 자본과 명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장’인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은 연약한 개인들의 성적·정서적·경제적 ‘교환과 투쟁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조건 없는 사랑’은 이 곳에도 없고 저 곳에도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더욱 낭만적으로 이상화되며, 대중예술은 더욱 노골적으로 사랑의 예찬에 빠져들고, 사람들은 ‘사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정’도 아닌‘거리’에서 배회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현대인의 일반정서는 "고독한 홈리스’에 가깝다.
文 : 이명원(문학평론가)...."사랑" 그 빛바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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