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해보고 싶은 일
*강가에서 낮잠자기
*새우와 크로와상과 쫀득쫀득한 쌀밥 먹기
*춤추기
*당신이 골라주는 구두와 속옷과 향수사기
*때 밀기
*바보처럼 굴기
*당신 어깨 너머로 신문 읽기
*자전거를 빌려서 타지않고 그냥 놓아두기
*우리 여행 가방 챙기는 거 잊어버리기
*뜨개질 배워서 당신에게 목도리 떠주기
*그랬다가 보기 흉하다고 다시 풀어버리기..
위 글은 [안나 가발다]의 장편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중에 사랑하는 여인이 남자 주인공(話者)을 떠나면서 호텔방에 남겨두고 간 장문의 편지중 일부랍니다.
아들에게서 버림받은 며느리를 데리고 주말별장으로 떠난 시아버지가 그의 옛 사랑 마틸드와의 절절했던 사랑과 배신과 좌절에 대한 자신의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운데 나오는 부분입니다. 행복이 찾아왔으나 그 사랑앞에 전전긍긍하다 결국은 자신의 아내에게 돌아가야만 하고연인은 떠나고.. 삶을 복잡하게 만들 용기가 그에겐 없어 손을 내밀지 못했다고.. 며느리의 남편 아들은 떠났고 시아버지 자신은 예전에 떠나지 못했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죄도 없는 가족에게 고통을 주고, 떠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잘못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용기있는 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게 사랑이라더니 정말 그럴까요? 조금 더 애를 써야지 매일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해. 용기를 가져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지...라고 시아버지의 따뜻한 음성이 나의 귓전에 들려오는 듯 합니다.
★ 잘못된 만남 ★
잠시나마 형부라고 불렀었던 그 분의 근황을 들었습니다. 어려움을 오래 겪다가 얼마전에 재혼하여 울진방면 어느 깊숙한 시골동네에서 목회를 하고 계신다더군요. 벌써 세월이 까마득하군요. 한 때 대구 가창쪽의 은혜로운 기도동산에서 40일금식기도를 해 가면서 능력있는 전도사님으로 이름을 날렸던 분이었는데 시험인지 유혹인지 어느 날 계곡에 놀러왔던 예뿐 울 사촌언니를 만나는 바람에.. 신앙이라곤 냄새조차 맡아본 적 없는 여자를 만나는 바람에.. 그분의 인생에 이혼이라는 큰 오점을 남기게 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영화제목 같군요) 후유증에, 살아내는 일에 얼마나 힘겨워했었을까...
결혼한 후 아주 갓난아기 남매 둘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그 분을 원망할 수만은 없습니다. 평범한 인생 평범한 직분이 아니므로 어떻게든 견디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애썼을테니까. 오죽했으면 그리했을까 라고. 이제 세월이 지나 그 아이들이 모두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니... 자식 그리운 부정을 견디느라 또 얼마나 힘들었을꼬. 울 사촌언니야 제 잘난 맛에 잘 먹고 잘 살았다 치고 젊은 혈기에 덜컥 결혼하여 사기그릇 깨지듯 그리 허망하게 깨지고 난 후 그 인생살이 얼마나 고달팠을꼬. 그러게 목사 아내 자리는 아무나 덤비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어르신들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시지요.
★ 세번째 이야기/ 미워도 다시 한번 ...★
요즘 내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꽤나 불편하고 마음이 그렇습니다. 마음이 그렇다...이 말은 아직도 제 마음을 무어라 꼭 꼬집어 잘 표현을 못하겠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며칠동안 전전긍긍 속을 끓였습니다. 가뜩이나 을씨년스런 날씨때문에 신산스러워하고 있던 차에 남편의 입에서 차마 듣기 거북한 소리를 듣고야 말았기 때문입니다. 싸울 때 절대로 막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나는 고수하고 있는데 고지식한 양반은 뒷끝없다는 핑게로 하고 싶은 말은 절대 못 참는 좀 고약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도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또 보드라울 때는 한없이 보드라와지는 걸 아는지라 그저 속에 부아가 치밀어올라도 참을 도리밖에 없지요. 그렇게 지지고 볶아가면서 여느 부부랑 다를바 없이 산답니다.
어찌보면 참 잘 만난 커플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듣는 것을 즐겨합니다. 그는 생각한 것을 마누라든 누구든 붙들고 얘기하길 좋아하고 나는 글로 남기길 좋아합니다. 그는 외향적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섬세하고 감성적인 성품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쉽게 상처를 받기도 잘하고 감동도 잘하는데 반해 나는 내향적이고 에지간해선 속내를 잘 드러내질 않습니다.
집에 돈이 없을 때는 단돈 천 원도 없을 수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절대 돈 때문에 바가지 긁는 일은 죽을 때 까지 하지 않겠노라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기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또 섬기건만(^^) 그 진정을 몰라주고 억지소리를 해댈때면 정말 ~~ 누가 첨부터 길을 잘 못 들였구만 하고 핀잔을 주건 말건 나만의 사랑방법이었건만 징징 짜고 누구처럼 쫑알쫑알 대는 여자랑은 하루 한순간도 살기 어려운 남자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누라건만 긍정적으로 풀어내면 정말 환상적인 커플이 될 수 있겠는데 이것도 나이가 좀 더 들고 시간이 좀 지나면 해결이 될려나 보다하고 당신 어서 마흔만 되어라 기다린 세월이 이젠 그래.. 쉰만 되면 하고 고대하고 살아가는 나에게.
사실 부부싸움하다 무슨 말을 못할까요? 더우기나 경상도 열혈남아에다 성격 급하기가 어디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그런데, 정색을 하고 조용한 톤으로 '나, 당신 미워' 이렇게 앞뒤말 다 짜르고 요말만 하는데 솔직히 가슴에 멍 한 줌 들었습니다. 언제는 사랑으로 살았냐 우리가 죽고 못살아 남들 눈 속여가며 연애에 미쳐 결혼했냐 오래 살다보니 이젠 습관처럼 의지하고 없음 허전하고 그런거지 그저 나 너 사랑안해. 이젠 사랑하지 않아 이렇게 얘기한 것도 아니고그저 밉다... 이렇게 표현한 것뿐인데 나는 그를 미워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 마냥 그리도 서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래 그렇지 그럴거야라며 계절탓으로 돌리고 어디 속내 털어놓을 곳이 있나, 나한테라도 투정을 부려야 되었겠지라고 오만가지 이리저리 합리화를 시켜도 도저히 소화가 안되는거야요.
그 밉다.. 라는 말에는 요 며칠동안 장기적인 계획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의논하는 말에 별로 뾰족한 해답을 못 해준 죄목도 있고, 그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재깍재깍 해다 바치는 애인같은 마누라도 아니고, 심심찮게 브레이크나 거는 마귀할멈같은 마누라가 이쁠것이냐.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면 금새 이해가 가는구만. 이리도 속이 뒤틀리고 소화가 안되는 걸 보면 멀어도 한참 멀었다라고 생각이 드니..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바가지 더 억울하고 서럽고.. 밉다.. 라는 말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네요.
나쁜 것은 금새 전염이 된다더니 그러고보니 하루종일 나도 너 미운게 한두가지가 아니다뭐? 이러고 있었어요. 어항 귀퉁이에 걸어둔 헬스가방도 밉고 마당에 돌아다니는 몇 십만원 한다고 귀하게 키우라는 진도도 밉고 얘기 나왔으니 말이지, 사람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병아리도 못 만지던 마누라에게 개새끼^^를 두 마리나 안겨주며 키우라 하니 그것도 밉고.. 여자나 항아리는 내돌리면 깨진다나 외출도 맘대로 못하게 하는 그 보수적인 생각도 밉고..
그때 그 일도 밉고 저번 그 ... 희한하게도 생생하게 잊혀졌던 일들이 하나둘 새록새록 다시금 생각이 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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