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어령2

[이어령] 바다는 반복을 하면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이어령] 바다는 반복을 하면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푸루스트 (M. Proust)는 "육지는 끝없이 변하지만 바다는 천지창조 때의 모습 그대로" 라고 말한다. 인간은 육지의 모든 것을 변형시키고 분할했다. 땅을 깎아 길을 만들고 마을과 도시를 세워 강에는 다리를 놓는다. 때로는 성터를 허물어 공장을 짓기도 한다. 그것이 땅의 역사이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는 아무것도 짓거나 허물 수가 없다. 배가 지나가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바다는 역사를 만들지 않고 거꾸로 그것을 지우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문화의 첫 강의에서 여러분들에게 지우개 이야기를 했다. 바다야말로 거대한 그리고 불멸의 초록색 지우개가 아니겠는가. 바다에서는 어떤 관념도 파도처럼 일다가 금시 소멸해버린.. 2021. 2. 3.
여름에 본 것들을 위하여/이어령 여름에 본 것들을 위하여 /이어령 한여름에 그리고 흰 영사막처럼 모든 풍경이 정지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웃통을 벗고 모래밭 길로 뛰어 달아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창 끝 같은 예리한 햇빛이 검은 피부에 와 찍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하늘로 뻗쳐 올라가다가 그냥 사라져 버린 하얀 자갈길을 본 적이 있는가? 매미 소리에 취해 버린 나무 이파리들이 주정을 하듯 진동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보았는가? 여름 바다를. 시의 첫 구절과도 같고, 터져 버린 기구와도 같고, 녹슨 철책을 기어올라가는 푸른 담장이 덩굴과도 같고, 원주민끼리의 잔치와도 같은 그 여름 바다를. 번쩍거리며 풀섶으로 숨어 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룡의 새끼를 닮은 도마뱀의 꼬리였던가? 옛날 아주 옛날에 창공을 향해 쏘았던 잃어버린 .. 2011.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