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성1 수의를 만드시던 나의 어머니 수의를 만드시던 나의 어머니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가 삼십 구만 원 짜리 옷을 손수 장만하셨다. 평생 그런 비싼 옷은 처음이셨다. 한사코 허름한 가격표를 확인하고서야 겨우 옷 사기를 허락하시던 당신의 요지부동 헌법 1조 1항을 기꺼이 스스로 어기신 것이다. 오늘밤에도 요모조모 세상을 뒤척이시다가 아들, 손자 다 잠들기 기다려 장롱 깊숙이서 꺼내 살풋 어루만지실 어머니의 새 옷. 낯선 불안과의 면접 때 입으시려는 단벌의 외출 정장일까. 미처 면사포 한번 써보지 못하고 어영부영 헤어진 아버님께 보이실 신식 웨딩 드레스일까, 나는, 생전 한번도 사드리지 못한 거액의 저 눈부신 황금빛을 마침내 아주 이별하는 마당에 이르러 얼음장같은 멍 행여 다치지 않게 곱고 단정하게 입혀드려야 하는 것이다. - 김규성 시인 '수.. 2020. 3. 9. 이전 1 다음